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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만세 | ‘염력’ 연상호 감독 “‘연상호답다’가 무엇인지 고민 중”

초능력자 아버지가 딸과 상가 철거민들을 위해 능력을 발휘하는 이야기 ‘염력’은 연상호 감독이 대학 시절부터 꿈꿔온 상상의 실현이자 그의 취향이 반영된 작품이다. 천만 영화 ‘부산행’(2016)에 비하면 스코어는 낮지만, 연상호 감독의 추후 행보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용산 참사 소재 절대로 뺄 수 없었던 이유

‘부산행’으로 천만 관객을 모은 연상호 감독이 신작 ‘염력’으로 관객과 만났다. 사진 시티카메라(니콜라우스)

 ‘염력’은 초능력의 실사 구현이 큰 기대를 받는 영화였습니다.  ‘부산행’으로 천만 관객을 모은 만큼 전반적인 제작 투자 과정에서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염력’을 애니메이션으로 할 수 없었던 이유는 투자가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부산행’ 감독이라고 하더라도 제가 애니메이션 한다 그러면 아무도 투자 안 합니다.(웃음) 투자자 입장에서 애니메이션에 돈을 댄다는 것은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죠. 어차피 계속 마이너스가 나는 상황이다 보니, 옛날부터 애니메이션을 오래 하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배급사 NEW에서도 정기적으로 실사영화를 함께 하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사실  ‘부산행’을 하려고 했을 때도 그쪽에서 내부적인 반대가 있었는데, 당시 영화사업부를 이끌고 있던 장경익 대표가 많이 도와줘서 제작할 수 있었죠. 그래도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에 비하면 ‘부산행’과  ‘염력’ 모두 수월했던 편입니다.

히어로 영화의 외피를 쓴 철거민 이야기입니다. 내부적으로 영화의 톤앤매너에 대한 갈등은 없었습니까?    

‘부산행’의 후반 작업을 하면서  ‘염력’의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NEW에서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더 장르영화스럽게 내용을 고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냥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 생각해둔  ‘염력’의 톤앤매너와 메시지가 있는데, 굳이 이것을 장르영화로 고쳐야 한다면 차라리 다른 프로젝트를 하는 게 낫겠다 싶었으니까요. 그래서 스톱시키고 다른 작품을 하고 있었는데 류승룡 선배가 계속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연락을 주셔서 NEW와 다시 이야기를 하게 된 겁니다.

특별히 용산 참사 소재에 대한 반대가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배급사에서 그렇게 구체적인 이야기를 했던 건 아니고 제작사 쪽의 의견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고심을 하다가 용산 참사에 대한 내용을 아예 싹 뺀 버전으로, 아예 장르영화스럽게 다시 써봤어요. 심은경 배우와는 전부터 같이 하기로 했었고 류승룡 선배도 참여하겠다고 했으니 두 배우를 놓고 수정 버전을 썼죠. 그건 지금의  ‘염력’과는 많이 달랐어요. 부녀 관계도 아니고, 둘 다 초능력이 있어서 서로 싸우는 내용이었죠. 그 버전으로 개봉을 했으면 지금보다 대중적인 선호도는 더 높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웃음)

‘염력’은 초능력을 쓰는 평범한 아버지가 상가 철거로 위기에 놓인 딸을 구하기 위해 능력을 발휘하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이면에는 철거민의 아픔이 있다. 사진 NEW

용산 참사 소재가 왜 반대에 부딪혔다고 생각하십니까? 

기본적으로 철거민에 대한 이야기는 관객의 동의를 얻기가 힘듭니다. 예를 들어 민주화라던가 과거 청산 같은 소재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받고 있습니다. 찬성과 반대 양쪽이 모두 존재하죠. 하지만 도시 개발은 다수의 이익을 위해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반반의 의견으로 나뉘어지지 않습니다. 보편적 다수를 이해시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요.

과거에는 다수가 도시 개발의 피해자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 때는  ‘서울의 달’(MBC, 1994)을 비롯해 통속 멜로든 뭐든,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도시 개발을 배경으로 두고 있었죠. 그런데 어느 정도 개발이 진행되면서 그것이 다수의 이익을 위한 일이 된 후에는 상업영화로 그런 소재를 다루는게 어려워졌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정본 대신 ‘염력’의 본래 버전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장르영화를 할 기회는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장르영화보다는 다른 걸 하는 게 낫겟다고 생각했어요. 연출이나 영화의 톤앤매너 등을 통해서 이 불편한 소재를 대중에 과연 어느 정도까지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개인적으로 호기심도 있었고요.

이미 영화는 개봉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중이 얼마나 공감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기대 이하죠. 저는 ‘관객 수’라는 숫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숫자를 어느 관점으로 보는가에 따라 의미는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부산행’과 비교한다면 굉장히 작은 숫자죠. 하지만 최근 10년 간 도시 개발을 다룬 영화들의 관객수 총합보다는 훨씬 클 겁니다. ‘염력’을 하면서 가장 중요했던 목표는 도시 개발에 관심 없는 보편의 관객에게 소재의 이미지를 얼마나 심어줄 수 있는가라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이미지를 심어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디에선가 비슷한 일을 보게 되면 영화의 이미지가 떠오를 테니까요.

# 옛날 영화에 대한 동경 

연상호 감독은 철거민에 대한 관심이 대학 시절부터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NEW

말씀하신 것처럼 보편의 관객은 관심 없는 이 소재에 연상호 감독이 주의를 기울이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제가 96학번인데 한총련이 해산된 때가 아마 96년도일 겁니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운동권이 이미 해산된 후였어요. 그리고 민주화보다는 도시 개발이 화두였습니다.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상계동 올림픽’(1988) 같은 것을 봤고, 어렸을 때 그렇게 좋아했던 올림픽이 강제 철거에 의해 이뤄진 일이라는 걸 알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영화의 운동성 때문에 알게 된 것이었죠. 그렇다고 제가 운동권 출신이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그 시대에는 이미 운동권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거든요. 다만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었을 뿐입니다.

줄곧 작품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그런 경험의 영향일까요? 

아무래도 제가 속했던 진영의 영향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대학 시절을 거쳐서 영화에 처음 입문할 때 독립영화계에 속했기 때문에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습니다. 독립영화에서는 워낙 그런 소재를 많이 다루고 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염력’에서 초능력은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도구로 쓰인 것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만들 때 무엇이 도구이고, 무엇이 메인인지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염력’은 제 대학시절의 경험이나 옛날 것들에 대한 동경을 담은 작품입니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  ‘진짜 사나이’(1996)처럼 키치한 작품들이 주류인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옛날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지금의 영화 산업에서는 사실 그런 류의 블랙코미디를 기획하는 것 자체가 힘들긴 합니다만.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 했던 ‘염력’은 류승룡 배우가 합류하면서 제작에 힘을 얻었다. 사진 NEW

총 제작비만 130억이 들어갔습니다. 그런 도전 자체가 굉장한 모험이었을 텐데요? 

사실 60억 정도면 될 것 같았는데 요새 인건비가 올라가서 제작비도 많이 늘었습니다. 인건비 상승은 당연한 일이지만 좀 걱정이 되긴 합니다. 한국 영화 시장이 너무 더디게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해외 세일즈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염력’이 다소 낯설게 받아들여지지만, 해외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예산의 상당 부분은 해외 세일즈로 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류승룡 배우의 합류로  ‘염력’이 진행될 수 있었고, 심은경 배우도 ‘부산행’  ‘서울역’(2016)에 이어  ‘염력’까지 활약해줬네요.   

상업영화판에 오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영화가 만들어지려면 배우 캐스팅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심은경 배우는 굉장히 프로페셔널해요. 배우들의 경우 각자의 연기를 끌어내는 독특한 방식 같은 게 있는데, 그런 점에서 되게 평범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해서 그런지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습니다.

박정민 배우가 ‘뷰티와 거리가 먼 배우’라서 캐스팅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데 정말 그렇습니까?(웃음) 

처음 만난 게 한 시상식이었을 겁니다. 제 앞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젊은 남자 배우들 중에서 되게 잘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연기적으로 담을 수 있는 게 많아 보였거든요. 외모가 주는 이미지가 리얼하다고 해야하나. 사실 남자 배우들 보면 머리가 조막만하고 키도 너무 커서 현실감이 없잖아요. 물론 그런 분들이 어울리는 장르도 있겠지만 요새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한국영화의 경향성으로 봐서는 박정민 배우 같은 스타일이 잘 어울리는데가 많죠. 작품성 있는 얼굴입니다.(웃음) 연기를 잘 한다는 표현, 그 이상이에요. 낭중지추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 연상호도 모르는 연상호 월드 

연상호 감독은 ‘연상호다움’의 필요성을 이제 느끼기 시작했다는 진솔한 속내를 털어놨다. 사진 시티카메라(니콜라우스)

홍상무(정유미)가 현대판 노예에 관해 직접적인 대사를 던지는데, 너무 현실적이라 씁쓸하더군요. 영화의 엔딩을 보면서 약자의 연대에 어떤 의미를 담고자 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리뷰를 읽어보니 결국 패패인가 승리인가에 집착하는 분들이 꽤 많더군요. 사실 ‘염력’의 엔딩은 승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방향이었어요. 전국철거민연합의 사례집만 보더라도 패배가 훨씬 많아요. 패배가 의미 없는 것이라면 운동 자체를 하지 말아야죠. 하지만 계속 운동을 하는 건 패하지 않고자 하는 과정, 그 자체에 승패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20대 시절의 연상호에게 한 마디 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전하시겠습니까? 

“그림을 열심히 그려라.” 사람은 기술이 있어야 돼요.(웃음) 제가 하는 일은 영감에 관련된 일이에요. 그런데 감으로 하는 일들은 결과의 편차가 커요. 잘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어요. 물론 투자배급사에서 어떻게 하면 잘 된다고 로직화시킨 결과물이 있지만 그게 100% 맞기란 매우 힘들죠. 하지만 기술이라는 건 어렸을 때 배워놓으면 평생 써먹을 수 있잖아요.

연상호 감독이 영화를 하지 않았으면 어떤 일을 했을까요? 

저는 유령 작가가 되고 싶어요. 그냥 아무거나 막 쓰게.(웃음) 꽤 오래 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름을 걸고 뭔가를 만드는 게 좀 힘든 거 같아요. ‘염력’의 경우만 보더라도 내가 아닌 사람들이 내가 만든 것에 대해 ‘이게 연상호스러운가 아닌가’를 논쟁해요. 그게 사실 이해가 잘 안 가요. 도대체 연상호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저도 모르겠다니까요. 내 이름이 나와는 별개의 의미가 되어 이 산업 내에서 통용되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불합리한 측면이 있죠. 영화라는 건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드는 것이고, 저는 공동의 목표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편인데 많은 요소들이 모두 합쳐져서 연상호라는 하나의 브랜드로 노출이 되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인정하기로 했어요. ‘연상호다움’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는 걸. ‘염력’ 전에만 해도 그걸 의도적으로 피하고 싶었거든요. 오히려 영화를 자유롭게 만들지 못하게 되니까요.

창작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연상호다움’이라는 타이틀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단편부터  ‘염력’까지 지금껏 만들어온 작품 안에 제가 걸어온 과거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다음 작품이 이전 작품과 별개의 것으로 보여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관객도, 기자들도, 업계도 그 연속성을 보고 판단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요. 그것은 제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변할 수 없는 거라면 인정해야 하는 것 같아요. 가장 이상적인 것은 늘 가명으로 영화를 내는 것이지만요.

다음 작품에는 그러한 인식이 반영이 될까요? 멜로와 호러의 결합을 꿈꾸고 계시죠? 

이미 다 쓴 시나리오가 있는데 많이 고쳐야 할 것 같아요. ‘염력’이 잘 되면 그걸 차기작으로 하려고 했는데 지금 흥행이 잘 안됐으니 상황을 더 봐야죠. 제 인식의 변화가 어느 정도 차기작에 반영이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될 수 있으면 인간 연상호와 직업인 연상호를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차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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