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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치던 방’ 이상희 “보는 사람마다 위로받는 지점이 다를 거예요”

이상희는 티 없이 맑은 유영(김새벽)의 얼굴에 위로받았다. 주인공의 내면, 타인과 관계의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는 ‘누에치던 방’에 대해 이상희는 사람마다 위로받을 여지가 많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 과거와 직면해보면 어떨까요?

이상희는 프랑스에서 촬영한 단편영화 ‘벨빌’(2016)의 정원희 감독님의 추천으로 이완민 감독의 ‘누에치던 방’을 촬영하게 됐다. 사진 시티카메라(니콜라우스)

누에치던 방은 파리3대학 영화과를 다닌 이완민 감독이 처음 한국에서 촬영한 영화입니다. 캐스팅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도 ‘누에치던 방’으로 감독님과 처음 만났습니다. 한번 보고 싶다고 연락을 받았어요. 프랑스에서 촬영한 단편영화 ‘벨빌’의 정원희 감독님의 추천으로 연락하신 것 같습니다. 두 분이 친구 사이라고 들었어요.

누에치던 방시나리오를 처음 본 소감은 어땠습니까?

정교하고 풍경 묘사가 소설처럼 잘 되어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시나리오와 비교하면 영상적인 부분들이 상세하게 적혀있었어요. 되게 섬세한 감독님일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읽었습니다. 내용은 시나리오의 파편적인 상황들이 와 닿는 부분도 있었고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었습니다.

일단 감독님을 만나봤는데 (이)완민 감독님이 정말 드물게 예쁜 사람이거든요. 처음 만났을 때 사람 자체가 예쁜 사람이라는 느낌이 와서 같이 해보면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하게 시나리오를 온전히 이해한 건 아니라고 했더니 감독님도 그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말하셨어요.

어떤 부분이 와 닿고, 어떤 부분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나요?

친구 관계가 단절된 경험은 의도치 않게 제 삶에도 있는 부분들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사소하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이기적인 저의 선택 때문에 끊어진 친구 관계가 있어요. 그것에 대한 죄책감, 그리움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반면 정념적인 상황, 예를 들어 토론하는 장면 같은 경우는 실제 삶에서는 경험한 적 없는 부분이었어요. 감독님이 채미희(이상희)는 굉장히 억압된 채 살아왔다고 표현하시는데, 그런 캐릭터도 머리로는 어렴풋이 알겠지만 완전히 제 가슴으로 확 내려앉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채미희는 처음 보는 여자 조성숙(홍승이)에게 다짜고짜 과거의 단짝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조성숙도 모르는 사이인 걸 알면서 미희를 받아준다.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무브먼트

미희와 성숙을 포함한 여러 인물이 토론하는 집회 활동에 대한 이야기는 미희 감정 상태와는 동떨어져 있기도 하죠. 미희는 왜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며 나갑니다.

특히 그 장면은 대본에 없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둘러앉은 사람들 중에 배우가 아닌 사람이 더 많았어요. 집회 참가자, 우리 영화의 스태프 중 한 명 등 여러 사람이 경험을 이야기 한 장면입니다. 저도 (홍)승이 언니가 즉석에서 묻는 말에 답하기도 했고 대본에 따라 연기하기도 했고요. 말씀하신 대사는 대본에 없었는데 그때 제가 되게 불편하고 갑갑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말하고 나갔어요.(웃음)

애드리브나 현장에서 결정하는 것이 많은 촬영장이었나요?

토론 장면만 예외였고 대부분은 대본에 기초해서 찍었습니다. 감독님의 스타일은 ‘불편한 장면이 있으면 굳이 그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였어요.

미희와 성숙이 초면에 과거 단짝이었다며 친구로 지내게 되는 점이 영화의 시작이자 가장 낯선 지점입니다. 둘의 관계는 이해가 잘 됐나요?

미희와 성숙이 처음 만나는 장면을 실제라고 생각해보면 이해할 여지는 있어요. 위태로워 보이는 누군가가 오면 잠깐 안아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자체를 개연성이나 내러티브 보다 파편적인 상황과 상태에 집중을 하면서 연기를 하려고 했어요. 영화를 보시는 분들도 마음을 열고 그 상황과 상태에서 감정을 느껴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면 되게 공감할 여지가 많은 영화거든요.

미희는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했나요?

절박한 상황에서 나름대로 살려고 발버둥치는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명확한 확신이 없어서 부모님의 바람대로 살려고 계속 노력했겠죠. 나한테 중요한 사람이 원하는 걸 하려고 하는 심리가 있잖아요.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이걸 왜 하지?’ 생각하게 되고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타인과 관계가 단절된 상태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상태가 오래돼서 남들이 보기에 정상적이지 않은 형태로 삐질삐질 감정이 새어나오는 망가진 상태인 것 같아요. 겉보기에는 괴이하고 망가져 보일 수도 있을 거예요.

이상희는 채미희를 연기할 때와 하지 않을 때 미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 재미있다고 전했다. 사진 시티카메라(니콜라우스)

전작도 마찬가지지만 미희를 연기할 때 표정이 무척 현실적입니다. 촬영할 때도 캐릭터의 감정에 깊이 빠져드는 편인가요?

캐릭터를 이해하고 싶고 잘 표현하고 싶어서 맡은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편입니다. 연기할 때는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미희를 본 사람들은 ‘쟤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고 하는 거예요.(웃음) 저는 ‘미희가 얼마나 절박한데!’라고 했는데 미희를 벗고 밖에 나와 보니까 다른 사람들의 말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너무 희한한 게 채미희를 연기할 때와 아닐 때에 인물을 판단하는 게 달라져요. 재밌었습니다.

누에치던 방을 본 관객이 위로를 받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영화이길 바라나요?

위로와 용기를 받으셨으면 좋겠는데, 그런 지점은 많은 것 같습니다. 제게 힘이 되는 지점은 유영이가 해맑은 얼굴로 티 없이 맑게,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이었어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제된 표현을 하게 되잖아요. 암묵적으로 사회적으로 강요하기도 하고 혹은 지레 그렇기도 하고요. 그런데 생기 있는 유영이의 모습들이 좋았고 힘이 됐습니다.

살다보면 단절된 관계나 과거의 상처들을 묻어두게 되는데, 과거와 직면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그러면 좀 더 현재에 발을 내디디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이 정도이지만 보는 분들에 따라 위로가 되는 다른 지점이 있을 거예요.

# 새로움의 연속이었던 2017

이상희는 지난해 드라마 하면서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하면서 몰랐던 즐거움을 맛봤다. 해보지 않고선 모르는 일들은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사진 시티카메라(니콜라우스)

지난해에는 아이 캔 스피크’(2017), 드라마 ‘20세기 소년소녀’(2017,MBC)로 대중과 만났습니다. 배우로서 어떤 한 해였나요?

안 해본 걸 많이 했던 해였습니다. 긴 호흡으로 촬영하면서 중간 중간에 대본이 나오는 드라마 환경을 처음 경험했는데, 되게 좋았어요. 영화와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재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역시 안 해본 것들은 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랬으면 좋겠고요. 막상 부딪혀 보면 ‘싫어서 안 하는 거야’라고 하다가 막상 부딪혀 보면 큰 즐거움과 재미를 얻게 되더라고요.

한예슬, 류현경과 삼총사 친구로 등장하고 김지석과도 학창시절 친구로 나와서 재미있게 촬영한 것 같았어요.

너무 좋았어요. 진짜, 진짜 재미있게 찍었습니다. 그동안 라이트(light)하게 기분 좋게 찍은 작업이 많지 않았거든요. 이전까지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을 주로 하기도 했고(웃음) 친구 이야기라서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 분들과 다른 드라마에서 또 만나고 싶어요.

아이 캔 스피크에서 나문희 선생님과 연기도 처음이었죠?

눈앞에서 연기를 볼 때 가끔씩 그냥 정신이 나갈 정도였어요. 선생님처럼 오래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평상시에는 소녀 같은 면이 부러웠습니다. 아름답거나 좋은 걸 보면 표현에 스스럼이 없으세요. 살다보면 당연해지는 것들에도 감정이 말랑말랑하세요. 그래서 연기도 잘 하실 수 있나봐요.

# 삶과 직업의 균형을 맞춰가는 이상희

이상희는 감독, 사람을 만나보고 영화 출연을 결심한다. 사진 시티카메라(니콜라우스)

연애담’(2016) 개봉 당시에 유명해지지 않고 오래 배우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생각은 여전한가요?

아직도 그래요. 너무 유명하지 않으면서 좋은 작품을 꾸준히, 오래 하고 싶습니다.(웃음) 유명하면 좋죠. 사랑받는 건 좋지만 톱스타라서 힘들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아직까지는 동네에 다니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해요. 굉장히 좋습니다.(웃음) 프로페셔널한 유명인의 삶과 개인의 삶의 균형이 잘 맞으면 좋겠지만 개인의 삶이 잠식되면 저는 너무 힘들 것 같아요.

누에치던 방은 이완민 감독을 만나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했는데, 평소 어떤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지나요?

전에는 시나리오가 좌우를 했는데, 최근 한 3년 전부터는 시나리오가 괜찮으면 우선은 감독님을 만나봅니다. 감독님한테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좋아할 만한 지점이 있고 애정 할 만한 지점이 있는 사람이 있어요. 혹은 영화가 잘 안 나와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을 만나면 그냥 그 사람이랑 같이 작업해요. 해 봐요.

상업영화를 하게 될 때는 주체적인 캐릭터가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한 에피소드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보다 이야기 안에서 개인의 이야기가 보이는 캐릭터를 만나고 싶어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요?

열혈형사 해보고 싶어요. 중성적인 형사 캐릭터요. ‘원라인’(2017)에서 (안)세하 씨가 연기한 천형사를 보면서 ‘딱 내 역할이다’ 했어요.(웃음)

단편영화 벨빌촬영했던 프랑스에서 여행도 했나요?

영화만 찍었고 딱 하루 쉬는 시간이 있어서 혼자 루브르 박물관에 다녀온 게 다예요. 하지만 누구보다 파리를 잘 감상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로케이션이 파리였는데 골목, 골목을 같이 헌팅하러 다니고 촬영했거든요. 파리의 랜드마크나 명소가 아니라 온 동네를 누빈 것 같아요.

앞으로 활동도 궁금합니다. 차기작은 어떤 작품인가요?

‘춘천, 춘천’(2016)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던 장우진 감독과 함께 합니다. 2월에 춘천에서 신작을 찍어요. 저는 ‘웬 여자’ 역할입니다.(웃음) 이름이 없어요. 중년부부와 젊은 커플이 중심인 이야기인데 저는 조연으로 그들과 만나게 됩니다.

+ 20대의 이상희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괜찮아, 너무 참지 마.”

스물다섯 즈음에는 고민을 말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말로 뱉었을 때 별거 아닌 게 확인되거나 괜찮아질 수 있는 경우가 있는 것 같은데, 그때 저는 너무 꽁꽁 싸매고 있었던 것 같아서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채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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