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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萬世 | <1987> 장준환 감독 “모두가 주인공인 이야기이길 바랐다”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격동의 시절이 스크린에 옮겨졌다. 지난해 12월 27일 개봉한 <1987>은 1987년 민주화 항쟁을 다룬 영화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부터 이한열 열사의 사망까지를 그린다. 장준환 감독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30년 전 그 시절을 시민들이 주인공인 뜨거운 드라마로 만들었다.

# 비밀리에 준비한 프로젝트 <1987>

장준환 감독은 <지구를 지켜라!>(2003)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등 연출작마다 독특한 소재로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그는 4년 만에 <1987>로 돌아왔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 이후 4년 만입니다. 차기작이 왜 이리도 오래 걸렸나요?

예전에 비하면 엄청 빨라진 겁니다.(웃음) <지구를 지켜라>(2003)에서 <화이>까지 10년이 걸렸잖아요. 그간 어떤 작품을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김경찬 작가가 쓴 <1987>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박 처장(김윤석)이란 안타고니스트를 척추로 해서 많은 인물이 부딪히는 구조였습니다. 또한 각자의 캐릭터들이 모여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는 게 영화적으로 독특하고 재미있더군요.

<1987> 언론시사회 이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사실관계를 말씀드리자면 영화를 보다가 먼저 울었어요.(웃음) 배우들과 완성본을 처음 보는 자리였습니다. 옆에서 배우들이 자꾸 우니까 저도 감정이 전이가 돼 자꾸 눈물이 났어요. 박종철 열사가 돌아가실 당시 만 21세였고, 이한열 열사는 스무살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무살짜리 청년이 국가권력에 의해 그렇게 된 거잖아요. 시사회가 끝나고 대기실에서 마음을 추스르려고 하는데 조 반장 역의 박희순 배우가 또 울더라고요. 박희순 배우는 스타일리스트가 있으니 매무새를 고치고 나갔는데 저는 그냥 나갔다가 그런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창피하게 됐네요.

장준환 감독은 전 정권이 만든 영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던 입장이기도 합니다. 군부독재 타도를 위한 민주화 항쟁을 다룬 <1987>을 기획하면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럼요. 영화를 굉장히 비밀리에 준비했습니다. 이 기획이 알려지게 되면 우리가 원치 않는 장애물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혹자는 정권이 바뀌니 시류에 편승에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용기를 내서 기획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더 뜻깊습니다.

# 강동원부터 김윤석까지, 하늘이 도운 캐스팅

장준환 감독은 캐릭터마다 선명함을 부여해 <1987>을 거대한 인물 드라마로 만들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비밀리에 진행된 프로젝트였지만 캐스팅은 비교적 수월했다고 들었습니다. 자발적으로 출연 의사를 밝힌 배우들이 많았다면서요?

영화의 윤곽이 어느 정도 나온 뒤 합류하고 싶다고 말한 배우들이 있었습니다. 강동원은 “작품에 폐가 되지 않는 한 제가 할게요”라고 말했어요. 당시에는 이런 영화에 선뜻 출연하기에는 서슬 퍼런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결정한 거죠. 덕분에 <1987>이 시작될 수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고맙고 감사합니다. 하정우도 “작품 좋아요. 재미있어요”라는 짤막한 말과 함께 동참했습니다. 김윤석도 이 프로젝트를 지켜보다가 강동원, 하정우와 도원결의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주셨어요. 진짜 기적 같았어요.

<1987> 출연진 중에서 실제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배우가 있습니다. 강 본부장을 연기한 우현이 그 주인공입니다. 공교롭게도 극 중에서는 권력에 충성하는 관료를 연기했습니다.

우현은 이한열 열사의 대학교 후배였습니다. 김윤석과 함께 중국집에서 술 한 잔 하다가 이한열 열사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당시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운동화가 있어서 “이건 아무도 주인이 없는 거야?”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이한열 열사의 것이었다고 합니다.

김윤석과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이후 다시 만났습니다. 연출자의 입장에서 어떤 강점이 있는 배우라고 보십니까?

강동원과 김윤석, 하정우 등은 시나리오만 보고도 출연을 결정해 <1987> 제작에 힘을 실었다. 장준환 감독으로서는 은인이라 불러도 좋을만한 배우들이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김윤석은 뭔가를 미리 재단하지 않습니다. 작품이나 캐릭터에 대해 백지상태로 접근해요. 본질이 무엇인지 심도 있고 폭넓게 연구하기 위해서죠. 자신이 갖고 있는 패턴에 갇히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재능도 출중한데 그런 태도와 노력들이 병행됩니다. 막강한 배우라고 생각해요.

박 처장이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를 숨기기 위해 “‘치니 하고 죽었다라고 한 장면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독재정권 치하의 실언입니다.

저는 박 처장이 그 말을 하고 “어?”라고 하던 게 기억이 남습니다. 김윤석이 그렇게 표현할 줄은 몰랐어요. 덕분에 풍부하게 사실감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절묘한 애드리브는 영화를 하면서 본 적이 없었어요. 웃으면 안 되는 장면인데 많은 스태프들이 감탄하면서 웃었습니다.

# <1987> 실제와 허구 사이

<1987>은 1987년 1월부터 6월까지 일어난 일련의 민주화 항쟁을 그린다. 그러면서도 가상의 인물 연희를 투입해 드라마로서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연희(김태리)를 제외하면 등장인물 모두 실존 인물입니다. 허구가 아니다 보니 연출하면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겠습니다.

실제와 허구의 균형을 맞추는데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영화에 최대한 사실을 담는다는 걸 원칙으로 하되, 재미있는 드라마로 만들고 싶었어요. 캐릭터들이 각자 분별력이 확실하길 바랐습니다. 그래야 모두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되니까요.

<1987>을 본 박종철 열사 유족의 반응은 어땠나요?

김윤석이 박종철 열사의 누님과 통화를 하다가 제게 전화를 바꿔줬습니다. “이렇게 좋은 영화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했어요. 그때까지 조마조마했었거든요. 혹시나 유족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컸으니까요.

박 처장과 남영동 대공분실 사람들은 독재정권의 하수인입니다. 그럼에도 완전한 악역으로 그리진 않았어요. 권력의 희생양처럼 느껴지는 대목도 있습니다.

김윤석이 연기한 박 처장과 박희순이 연기한 조 반장은 군부독재 정권의 하수인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각자의 트라우마와 사연을 갖고 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의 폭을 넓히고 싶었습니다. 1987년에 일어난 사건들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일까지 담고 싶었어요. 전쟁과 이념의 트라우마를 겪은 세대까지 아우를 수 있길 바랐거든요. 또한 악역이긴 하지만 캐릭터가 풍부했으면 좋겠다고 여겼습니다. 인간에 대한 고찰이랄까요. 박 처장이 호두를 쥐고 있는 것도 여러 가지 시대상을 내포한 설정입니다. 당시 기성세대들이 손 운동과 혈액순환을 위해 호두를 손에 쥐고 있는 걸 많이 보고 자랐어요. 박 처장의 손을 보면 깊은 흉터가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빨갱이’를 때려잡다 다친 거겠죠. 그걸 극복하고 ‘빨갱이’를 계속 때려잡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겁니다. 하지만 박 처장은 분명히 악역이 맞습니다. 그 부분은 확고했어요.

대공형사 조 반장이 박 처장의 지시에 대해 받들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받들겠습니다”는 김경철 작가가 쓴 시나리오에 원래 있던 표현입니다. 당시는 굉장히 폭력적이었던 시대로 기억합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이지만 그랬어요. 조직의 규율이나 군기가 강했습니다. 특히나 대공수사처는 자기들만의 체계가 있었겠죠. 그래서 하기 어려운 일을 받을 때마다 “받들겠습니다”라는 묘한 말로 충성심을 외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강동원의 배역명은 왜 이한열 열사가 아닌 잘 생긴 남학생인가요?

시나리오 구조상으로 그게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인물을 숨겼다가 특정 시점에서 이한열 열사임을 밝히는 거죠. 거기서 나오는 놀라움은 물론 충격과 슬픔까지 다 염두에 뒀습니다. 일각에서는 강동원이 우산을 들고 등장하는 신을 두고 <늑대의 유혹>(2004)이 생각난다고 하더군요. 의도하진 않았습니다. 또한 이한열 열사는 실제로 연세대 만화사랑 동아리 출신입니다. 강동원의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이미지를 염두에 둔 설정은 아닙니다.

주인공들 6명과 강동원 외에도 여진구, 조우진, 김의성, 설경구 등 쟁쟁한 배우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캐스팅 당시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나요?

김윤석과 하정우 외에도 <!987>에서는 쟁쟁한 스타 배우들을 만날 수 있다. 김태리, 유해진, 이희준, 설경구, 우현, 문성근, 조우진, 여진구, 강동원 등이 그 주인공이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익숙한 얼굴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등장인물들이 많다 보니 관객들이 편하게 보려면 그래야 한다고 봤습니다. 쉽게 쉽게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덕분에 거대한 멀티 캐스팅이 됐습니다. 다들 재능이 출중하신 분들이었어요.

6월 항쟁 신에서는 아내이자 배우인 문소리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장준환 감독이 문소리의 연출작 <여배우는 오늘도>(2017)에 어깨만 출연했던 사실이 생각나더군요. 문소리의 <1987> 카메오 출연은 그에 대한 보답인가요?

서로 그렇게 주고받는 거죠.(웃음) 아무래도 부부 사이니까요. 문소리가 학생들의 단체 데모 장면에서는 연기 지도도 해줬어요. 정확하게 집어서 알려주니 학생들이 바로 알아듣더라고요. 말이 느린 제가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나았죠.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 소품 하나까지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장준환 감독은 민주화를 위해 광장으로 뛰쳐나온 1987년과 정권 교체를 위해 촛불을 들었던 2017년은 서로 닮았다고 말한다. 국민의 힘을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말씀하신 것처럼 1987년은 불과 30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당시 시대상을 재현하기가 어려웠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30년 전 모습으로 남아있는 곳이 거의 없었어요. 그간 우리나라가 정말 많이 변했더라고요. 더욱이 <1987>은 장소나 소품 하나까지 허투루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요. 연희네 슈퍼를 찾는데도 몇 개월이 걸렸습니다. 결국 목포까지 내려가서 촬영을 했어요. 당시 명동과 연세대의 풍경은 세트를 지어서 CG로 구현했습니다.

한국 영화 최초로 명동성당 내부를 촬영했습니다. 어떻게 내부 촬영 허가를 받았나요?

이야기가 갖고 있는 뜻과 힘에 동참해주신 것 같아요. 신부님들도 1987년에 민주화를 향한 노력을 하셨으니까요. 신부님들을 비롯해 불교와 기독교 등 종교계가 다 움직였었습니다. 성당 내에서 진행된 투쟁 역시 또 하나의 드라마입니다. 포위당한 상태에서 며칠간 항쟁을 한 것이니까요. 그걸 본 시민들이 모금을 하고, 명동성당 옆 여고에서는 학생들이 먹을 도시락을 신부님들께 드리기도 했었죠. (눈물을 훔치며) 아이고, 눈물이 나네요.

6월 항쟁을 위해 광장으로 뛰쳐나온 사람들을 보니 전 정권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가 생각났습니다. 어찌 보면 1987년이 2017년과도 닮아있지 않나 싶습니다.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개봉 2주차만에 440만 명을 동원한 비결이 아닐까요?

굉장히 신기했어요. <1987>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가 열리기 전부터 준비하고 있던 이야기였습니다. 그 사이에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죠. 그 원동력이 촛불의 뜨거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힘을 다시 한 번 느꼈어요. 그러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날 수가 있지’ 싶어서 착잡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어요. <1987>을 보시면서 현재를 사는 관객들이 ‘나 역시 주인공이구나’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성선해 기자

※ 감독만세(萬世)는 맥스무비의 감독 전문 인터뷰 코너입니다. 감독의 만 가지 세상, 만 명의 감독을 만날 때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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