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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萬世 | <기억의 밤> 장항준 감독 “사람이 보이는 스릴러를 추구한다”

<박봉곤 가출사건>(1996) 시나리오 작가로 출발해 <라이터를 켜라>(2002)로 연출 데뷔한 장항준 감독이 TV영화 <전투의 매너>(2008) 이후 9년 만의 신작 <기억의 밤>으로 돌아왔다. 공백이 길었던 만큼 복귀한 감회도 남다르다. 앞으로는 ‘스릴러가 꼴도 보기 싫어질 때까지’ 매달리겠다는 각오다.

장항준 감독이 OCN TV영화 <전투의 매너>(2008) 이후 9년 만에 <기억의 밤>으로 돌아왔다.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인터뷰에 라디오, 예능 프로그램 출연까지 영화 홍보에 열심이십니다. 주연배우 강하늘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더 바쁘시겠어요.(웃음)

약간 힘들긴 한데, 부인인 김은희 작가가 “오빠, 언제 또 하겠어? 즐겨” 그러더라고요.(웃음) 강하늘 배우가 군대를 갔으니 제가 더 열심히 해야죠. 여러 사람이 고생해서 만든 영화를 관객들이 그 존재조차 모르면 원통하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본 후에도 관객들이 영화 별로라고 하면 어쩔 수 없는데, 아예 이 영화가 있었는지도 모른다면 속상하죠.

<기억의 밤> 크랭크인 전에 오랜만에 영화 복귀를 앞두고 설레어 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전투의 매너>(2008) 이후 영화 연출은 거의 9년 만인데 공백이 길어진 까닭이 있나요? 

사실 작정하고 일한 사람보다 일은 더 많이 했는데, 준비하던 영화들이 마무리가 잘 안 됐습니다. 어느 순간 ‘장항준이어서 투자가 안 되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다운됐어요. 제가 영화인 출신인데도 고향 사람들이 날 반기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밑으로 쭉쭉 내려가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바닥을 찍으니까 마치 심연에 있는 것처럼 평화로웠어요. 그때 딱 ‘어차피 될지 안 될지 모르겠으니 그냥 내가 정말 쓰고 싶은 걸 쓰자’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기억의 밤>입니다.

오히려 하고 싶은 장르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은데요?

계약도 전혀 안한 상태에서 저 혼자 1년 동안 시나리오를 썼어요. 훗날에 대한 생각을 다 버리니까 이야기만 보였죠. 제작사와 계약해서 돈을 받고, 원고 일정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캐스팅 논의를 하다가 들뜨곤 했던 과거와 좀 달랐습니다. 푸다닥 한 달 만에 초고를 쓰고 여기저기 돌렸던 그때는 진지하게 제 이야기를 검증하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이번에는 저 혼자 계속 다듬고 다듬느라, 남한테 보여주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공 들인 시나리오에 대한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한 50신 정도 썼을 때 제작사 대표한테 보여줬더니 단번에 계약하자고 하더군요. 김은희 작가는 ‘이걸 어떻게 혼자 썼냐, 안 힘들었냐’고 그랬고요. 잘 나가는 사람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기분 좋았죠.(웃음) 저한테 가장 필요한 말이었습니다. ‘이걸 이렇게 고치면 좋겠다’보다는 ‘재밌다, 잘 되겠다’ 그런 말이요.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느낌이거든요. 잘 될 것 같은 느낌, 일 낼 것 같은 느낌이요.

장항준 감독은 <기억의 밤>으로 호흡을 맞춘 강하늘, 김무열의 연기력과 매력적인 얼굴에 극찬을 보냈다.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강하늘 배우와 김무열 배우의 조합도 신선했습니다. 

연기 잘하는 20대 배우와 하고 싶었는데 마침 <동주>(2015)를 보니 강하늘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하는 거예요. 연예인 느낌이라기보다는 배우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늘이도 “무조건 하겠다”고 하니 기분 좋았죠. 형 캐릭터는 이중성이 있는 인물이라 신비감 있는 배우가 필요했는데 <은교>(2012)를 보고 김무열 배우가 딱이라고 생각했어요. 김무열 배우는 안경을 쓸 때와 벗을 때의 느낌이 완전히 다르거든요. ‘충무로의 유재석’이랄까.(웃음) 안경을 쓰면 모범적인데 벗으면 눈매가 굉장히 날카로워요. 제가 딱 원하는 마스크였습니다.

스릴러에서 긴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기억의 밤>의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가장 극적인 장치는 무엇이었나요?

2층의 작은 방이요. 작은 방으로 맥거핀 효과를 주고자 했어요. 이야기의 본질은 가족인데, 작은 방을 강조할수록 가족에 시선이 안 가거든요. 마치 아주 좋은 사람들이 이상한 집에 이사 와서 음모에 휘말린 것 같은 느낌이 들죠. 또 작은 방은 동생 진석(강하늘)에게 있어 호기심의 공간이자 트라우마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의식이 있을 땐 방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궁금해하다가, 의식이 없을 때는 두려워하던 어떤 형상이 방에서 튀어나오는 꿈을 꾸죠. 그 형상이 진석의 트라우마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긴장의 극대화를 위해서 특히 카메라 워킹이나 음악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습니다. 

진석의 시선으로 보이는 방이 중요했어요. 움직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카메라를 아주 천천히 밀면서 촬영했죠. 그리고 이 영화는 사운드가 굉장히 중요한 영화이기 때문에 촬영 들어가기 전에 믹싱실에 미리 소리를 디자인해달라고 했어요. 김태훈 음악감독한테도 몇 곡만 미리 데모로 만들어달라고 해서 현장에서 음악을 함께 듣고 촬영을 시작했죠. 그림 콘티에 그 소리를 입혀서 점점 더 명확하고 구체적인 느낌을 잡아간 것 같아요. 배우들도 리액션하기 훨씬 편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항준 감독은 늘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우선에 두고 영화 작업에 몰두하겠다는 신념이다.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극 중반의 내레이션 때문에 영화가 너무 친절하다는 평도 있습니다. 이런 방식의 전개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제 성격이에요. 투 머치 토크(웃음)! 스릴러 좋아하는 분들은 추리를 많이 하는데, 저는 스릴러를 안 좋아하는 분들도 재밌게 보길 원했어요. 생략을 하면 문제가 되는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볼 때는 굳이 알아야할 필요 없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포인트들을 최대한 축약해서 얘기하다 보니 내레이션이 된 거죠. 더 좋은 감독이었다면 그림으로 잘 녹여냈을 텐데, 저는 아직은 말로 설명하는 단계 밖에 안 되네요. 나중에 거장이 되면 그림으로 설명이 되겠죠.(웃음)

오랜만에 복귀하면서 영화에 대한 오랜 갈증을 얘기하고 계신데  한 인터뷰에서 드라마보다 영화가 더 좋다고 꼭 짚어 얘기하신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저에게 1순위의 꿈이죠. 누가 저보고 ‘영화가 너한테 무엇이냐’고 물은 적 있어요. 그래서 저는 ‘낮에도 꿀 수 있는 꿈’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감독은 배의 선장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한 편만 연출해도 평생 감독으로 불리잖아요. 마치 바다 가까이의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언제가 바다로 나갈 날을 꿈꾸는 선장처럼, 감독들도 늘 영화로 돌아가기를 꿈꿉니다. 기약이 없다는 점은 둘이 비슷하네요.(웃음)

남이 좋아할 만한 것을 하기 보다는 내가 재밌는 것을 하는 게 신조라고 하신 적 있습니다. 그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으신가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기는 힘들 겁니다. 그런데 별 것 아니에요. 제가 늘 캐치프레이즈처럼 말하는 게 ‘춤을 추더라도 남의 장단에 춤추지 말자’는 거죠. 일단 나부터 즐거워야 남도 즐겁게 해줄 수 있어요. 남의 장단에 춤추는 건 체조죠. 그런 건 다른 사람 눈에도 좋아 보이지 않을 거예요. <부산행>(2016)을 보세요. 좀비는 한국영화에서 금기 같은 존재이자 미국에서조차 마이너였어요.

<검은 사제들>(2015)은 어떻고요. ‘한국에 엑소시즘이 어디 있어?’ 그랬지만 아무도 안 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거든요. <변호인>(2013)이 나올 때 ‘지금 노무현 얘기를 해?’ 라고 했었죠. 분명한 것은 사람들은 하지 않은 이야기에 갈증을 느낍니다. 물론 제가 좋아하는 걸 대중도 좋아할지 걱정은 있지만 또 쪼이는 맛이 있어요.(웃음)

오랜만의 복귀인만큼 아직 스릴러에 대한 갈증도 해소되지 않았다는 장항준 감독. 차기작 역시 스릴러 장르를 계획 중이다.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장항준 감독은 감독으로는 드물게 코믹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대중적 이미지가 작품 활동을 하는데 영향을 미치나요?

영화계에서는 제가 가진 이미지를 좋게 보지는 않아요. 그래서 <기억의 밤>도 가명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제 이미지가 가볍고 명랑하니까 ‘장항준표 스릴러’를 과연 사람들이 보려고 할까 의문이었거든요. 저한테 ‘스타 감독’이라고 하는 표현이 제일 민망해요. 스타 감독은 박찬욱, 봉준호, 이준익 감독님 같은 분들이죠. 그 분들로 인해 산업이 움직이잖아요. 저는 포지션이 좀 애매해요. 유명하긴 한데 연예인은 아니고, 연예인 감독이라는 표현은 안 하니 스타 감독이라고 하는데, 기분은 좋지만 민망합니다. 스타 감독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단지 오래하고 싶죠.

오래도록 영화인으로 남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준익 감독님 멋있지 않나요? 힘 빼고 꾸준히 하는 게 되게 멋있어 보여요. 대작만 하겠다는 욕심도 없으시잖아요. 아마 힘을 빼니까 계속 잘 되시는 걸 수도 있고요. 운동 선수도 몸에 힘 들어가면 안 되는 것처럼요. 임권택 감독님은 당연하고, 정지영 감독님도 참 격 없이 젊게 사는 분이라 후배 감독들이 존경합니다. 아마 많은 감독들이 그분들처럼 되고 싶을 거예요.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블룸하우스나 뉴라인시네마에서 개성 강하고 신선한 스릴러들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훗날 장항준 스릴러라는 브랜드가 만들어진다면 어떤 색깔일까요?

사람이 보이는 스릴러요. 긴장감 넘치게 쫓고 쫓기다가도, 끝날 때는 먹먹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대중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쪼이기만 하면 되지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할 수 있는데, 한 발짝 더 들어가는 연출이 제 색깔과 맞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새벽에 대학 선배한테 ‘항준아, <기억의 밤>이 계속 떠올라서 잠이 안 온다’는 문자가 왔더라고요. 제가 만든 영화가 그런 느낌을 남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차기작까지 또 9년이 걸리는 건 아니겠지요?(웃음)

빨리 뭘 하긴 해야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또 스릴러가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아직 갈증이 해소가 안 됐어요. 스릴러가 꼴도 보기 싫어질 때까지 해야겠어요.(웃음)

글 차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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