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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땐뽀걸즈> 이규호 선생님 “저는 그저 평범한 선생님입니다”

직접 만난 <땐뽀걸즈> 이규호 선생님은 영화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즐거운 어른이다. 땐뽀반 학생들이 스스럼없이 선생님 곁에 머무는 이유는 분명했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학생들은 선생님을 온전히 믿어준다. 흔들림없는 신뢰에서 피어난 사랑이다.

# <땐뽀걸즈>에 나온대로 살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땐뽀걸즈>의 주인공이자 거제여상에서 11년째 체육을 가르치고 있는 이규호 선생님. ⓒ맥스무비 김미애(에이전시 테오)

이규호 선생님은?

2007년부터 11년째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이하 거제여상)에서 체육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1999년에 처음 부임한 거제 중앙고등학교에서 5년, 거제종합고등학교(현재 경남산업고등학교)에서 4년 재직하고, 거제여상에 부임했다. 현재 거제여상에서 체육을 가르치면서 댄스스포츠, 치어리더, 힙합 동아리를 맡고 있다.

<땐뽀걸즈>에서 이규호 선생님이 학생들과 친구처럼 격의 없이 지내는 모습은 충격에 가까운 감동이었다.  관객들은 그에게서 ‘내가 되고 싶었던 어른’의 롤모델을 찾았고, 뜨겁게 존경을 표했다. 권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저절로 따르고 싶은 어른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맥스무비가 거제여상에 가서 영화에 미처 담지 못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처음에 인터뷰를 고사했다가 다시 연락을 주셨습니다. 115() 대구 오오극장에서 열린 <땐뽀걸즈> 관객과 대화(GV)를 하고나서 생각이 바뀌셨다고요? 

<땐뽀걸즈>를 보러 창원에서 대구까지 찾아 온 관객이 계셨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영화가 개봉했지만 저는 조용하게 교직생활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처음엔 인터뷰를 고사했어요. 하지만 GV에 다녀오고 나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졌습니다. GV 마치고 바로 이승문 감독님에게 트위터를 배웠어요.(웃음) 계정(@lgh01234)을 만들어서 땐뽀반 학생들의 근황도 알려드리고 감사한 마음도 전하고 있습니다.

이승문 감독이 <땐뽀걸즈>를 촬영하고 싶다고 처음 찾아왔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우리 조용히 춤만 추고 살랍니다”라고 말하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랬는데 다시 찾아오더군요. 당시 3학년 학생들이 연습시켜주며 이제 발 떼기 시작한 2학년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찍어보자고요. 아이들과 모여 의논하고 촬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에는 멤버가 7명이어서 짝이 안 맞는 상황이었는데 제가 땐뽀반에 영입하고 싶었던 (김)현빈이를 설득해서 8명 땐뽀반이 완성됐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일상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촬영이 처음엔 어색했을 것 같습니다. 

감독님이 첫 일주일 동안 촬영도 안 하더군요. 저희와 함께 앉아서 밥 먹고 구경만 하길래 서울로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만 2주일 후에 다시 와서 촬영을 한다기에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할 일을 하면 되니까요.(웃음) 딱 한 가지 부탁한 게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방송에 나가서 상처받지 않게, 상업적으로 이용되지 않게 해달라고요. 인기를 위해서 없는 사실을 부풀린다거나 그러지 말고, 사실 그대로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 땐뽀반의 시작

<땐뽀걸즈> 이규호 선생님과 땐뽀반 학생들. 한 해에 열 번 이상 전국 방방곡곡으로 댄스스포츠 경진대회에 출전한다. 땐뽀반에게 대회란 학교를 알리는 기회이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아가는 시간이다. 사진 KT&G 상상마당

이승문 감독이 선생님을 처음 봤을 때 학생들에게 차비로 천 원짜리 지폐를 나눠주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했습니다. 댄스 연습하는 학생들에게 저녁과 차비를 챙겨주기 시작한 때를 기억하십니까?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습니다. 단지 동아리 운영비가 나오지 않았던 시절에 지역민 대상 주민자치센터 출강비를 받아서 학생들을 연습시켰습니다. 올여름에도 강좌 요청이 와서 (박)시영이, (박)지현이를 데리고 가서 댄스스포츠 수업을 했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제가 낯을 많이 가려서 대면하기가 참 어렵거든요. 아이들과 함께 가면 마음 편안하게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웃음)

댄스스포츠 동아리 ‘땐뽀반’은 언제부터 운영하셨습니까?

댄스스포츠 동아리는 1999년에 처음 부임한 거제 중앙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거제여상에 왔을 때는 거제시에서 지원해주는 치어리더 응원반을 배정받았어요. 댄스스포츠반은 제가 만들었고요.  학생들이 만든 힙합 동아리도 감독해주면서 현재 세 개 동아리를 맡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받는 운영비를 주 단위로 나눠서 한 번은 저녁밥, 한 번은 간식 등 예산을 짜는데, 대회를 앞두고 세 반의 아이들이 동시에 늦게까지 남으면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 아찔합니다.(웃음)

학생들과 댄스스포츠 대회나 공연 행사는 얼마나 자주 나가십니까?

1년에 10회 이상 전국 방방곡곡 다니는 것 같습니다. 대회에 나가면 학교 홍보도 할 수 있고 저와 아이들은 대회 일정에 맞춰서 맛집 탐방하는 재미도 누립니다. 광주, 경주, 제주도, 서울 등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좋은 구경도 시켜주는 재미가 있습니다.

승합차를 빌려서 아이들을 뒤에 태우고 제가 운전해서 다녀요. 일정이 끝나면 일일이 집 앞에 내려주는 게 피곤해도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메시지를 받으면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아이들한테 쓰는 시간과 돈은 아깝지가 않습니다. 아이들이 열심히 해주었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인터뷰까지 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땐뽀반 아이들이 없었다면, 어떤 기사에 제 이름이 나겠습니까.

댄스스포츠라는 종목을 선택하고 가르치게 된 과정도 궁금합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교육대학원 체육학 석사를 이수했습니다. 체육 교사를 준비하면서 댄스스포츠를 처음 접했는데 강사 선생님 나이가 많으시더군요. ‘나이가 많이 들어도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일이겠구나’ 싶어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또 재밌고 즐겁잖아요. 학교 동아리도 운영하고 학교 초중고등학교 선생님들 대상으로 댄스스포츠 강의도 합니다.

올해 4월 <KBS 스페셜>(KBS1)에서 <땐뽀걸즈>가 방영했고 9월에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선생님에게 찾아온 변화가 있나요?

수업하고 땐뽀반 아이들 연습 봐주고 대회 준비하는 일상생활은 똑같죠. 종종 영화 상영과 땐뽀반 공연을 함께 해달라는 요청은 받습니다. 11월 21일(화), 22일(수)에 거제청소년수련관에서 <땐뽀걸즈>를 상영하는데 상영 전에 공연을 하고 상영 후 GV도 해요.(웃음) 학교에 남아있는 (김)현빈이와 취업한 (심)예진이를 데리고 갈 생각입니다. 400석 매진이 돼서 무척 기쁩니다.

# 다 같이 잘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다

가장 기본적인 예절을 잘 지키는 학생들이 최고의 학생이다. 이규호 선생님은 함부로 아이들의 사생활을 묻지 않지만 마주치며 건네는 인사 한마디에 친구가 되는 선생님이다. ⓒ맥스무비 김미애(에이전시 테오)

<땐뽀걸즈>에서 선생님이 학교에서 토끼와 강아지에게 먹이를 챙겨주고 수박도 살펴보며 등장하는 장면이 참 좋았습니다.  

우리 애들 중에 친구가 없거나 외로운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토끼와 강아지를 데려다 놓았습니다. 동물들과 소통하면서 인성교육도 되고 학생들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3~4년 전부터는 포도나무도 심고 있습니다. 왜 심었는가 하면 ‘내가 떠나더라도 이 포도나무는 계속 남아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심었어요. 닭도 키웠는데 냄새가 너무 심해서 복날에 잡았어요. 선생님들이랑 급식실에서 회식했죠.(웃음) 지금은 메추리를 키웁니다. 처음에 키우던 15마리는 철장에 구멍이 나서 다 날아가버리고, 지금 새로 30마리를 데려와 키우고 있습니다.

<땐뽀걸즈>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께 편히 말을 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공손한 제자와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스스럼없이 편안한 사이로 보입니다.

땐뽀반을 운영하는 원칙이라면 가장 기본적인 예절을 잘 지키는 학생들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오면 온다, 가면 간다고 제게 잘 알려주고 인사 잘하는 학생들을 보면 제 마음이 열립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만 하면 그때부터는 친구죠. 제가 먼저 “니 어디가노? 뭐하노?” 하면서 다가가도 대개 절대 아이들은 말을 놓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말을 놓는다고 해서 선생님을 쉽게 보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아이들이 어떤 부탁을 하든 다 들어주려고 합니다. 제가 다 해줄 거라고 믿고 하는 부탁이잖아요. 배고프다고 하면 밥 사주고,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하면 데려다줍니다. 애들한테 “이제 타지마라” 한 적도 있어요. 전에 몰던 차와 지금 타는 차는 둘 다 뒷좌석이 내려 앉아서 한 번씩 거금을 주고 갈았거든요. 또 제 차는 뭐 물로 갑니까?(웃음) 그래도 뒷자리에 애들이 가득 타면 좋지요.

학생들이 스승의 은혜를 갚을 엄두도 안 날 것 같습니다.(웃음)

그걸 돈으로 살 수 있는가? 절대 아닙니다. 땐뽀반을 하면서 아이들과 저 사이에 믿어주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아이들은 제가 있든 없든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연습하고, 제게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주거든요. 그래서 저도 무엇을 해주든 기분이 좋습니다. 이 녀석들이 잘 해주니까 제가 이렇게 이름이 나는 거죠.

저는 그저 평범한 선생님입니다. 10년 동안 아무도 저를 몰랐잖아요. 무명 생활.(웃음) 인문계 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 공부시키느라, 상업고등학교 선생님들은 공부 안 하는 아이들 취업시키느라 고생합니다. 사명감 갖고 학생을 지도하는 숨은 선생님들이 정말 많습니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이규호 선생님에게 기쁨의 눈물과 용기를 안긴다. ⓒ맥스무비 김미애(에이전시 테오)

땐뽀반 학생들이 땐뽀반 활동을 통해 어떤 것을 배워가면 좋겠습니까?

의리죠, 의리. 책임감과 소속감도 심어주고 싶습니다. 얼마 전 땐뽀반이 대회 준비할 때 취업한 (박)지현이가 연차를 내고 땐뽀반 후배들 연습하는 걸 봐주러 왔습니다. 땐뽀반을 하며 배운 책임감과 소속감이 직장에선 애사심으로 연결될 겁니다. 또 땐뽀반은 한 명이라도 빠지면 연습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한 명 한 명이 책임감을 갖게 됩니다.

“네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해. 무대에 올라가면 모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본다고 생각하고 자신감 있게.” 무대에 오를 때마다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모두 사명감을 갖죠. 다 같이 잘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다는 걸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경험이라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수업시간에도 한 번씩 하는 이야기인데, 고등학교 때 일탈해 본 아이들은 성인이 됐을 때 그게 재밌는 게 아니었다는 걸 압니다. 매일 ‘공부, 공부’하며 공부만 하고 자란 학생들이 대학 가거나 결혼하고 여유가 생길 때 일탈을 하면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빠져버릴 확률이 더 큽니다. 왜? 어릴 때 경험해 보지 못한 자극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 땐뽀반 아이들에게 무대의 경험이 건강한 자극과 자신감이 되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선생님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실망감을 주는 학생들도 있을텐데요.

속 썩이는 학생에게 앞으로 잘해보겠다는 다짐을 받아도 사람이니 쉽게 바뀔 수 없습니다. 금방 나쁜 짓을 해도 아무 말 없이 지켜보면 아이들도 ‘아, 내가 잘못 했구나’하고 알아요.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스스로 반성하고 돌아오면 보듬어주는 것이 제 방법입니다. 선생님한테 미안해서라도 잘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스스로 변화하려는 아이들을 보면 기쁩니다.

물론 한 10년 전에는 ‘내가 잘 해줬는데, 이 아이는 왜 나에게 실망을 줄까’하는 고민도 했죠. 저도 보상심리가 있었습니다.(웃음) 상처받고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예전 학교 교장선생님이 보내주신 이메일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분께서 “선생님. 성경 말씀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엔 대가가 없습니다”라고 하셨어요. 베푼 만큼 돌려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죠.

저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사람마다 그릇의 크기가 다르다’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릇이 큰 사람은 아무리 지극정성을 쏟아도 넘치는 법이 없지만, 어떤 사람은 그릇이 소주잔만 해서 정성을 쏟는 게 소용 없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상처받지 않고 마음이 훨씬 편합니다.

땐뽀반 활동은 행복한 추억을 넘어 인생에 보탬이 되는 경험이다. 이규호 선생님은 땐뽀반에서 배운 의리와 책임감이 사회생활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 말한다. 사진 KT&G 상상마당

학생들이 이규호 선생님께 정말 많은 것을 배워가는 모습에 <땐뽀걸즈>를 본 많은 사람들이 흐뭇해졌을 겁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통해 선생님께서 배우는 점도 있을까요?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 순수한 마음을 배웁니다. <땐뽀걸즈>에서 학생들이 저 몰래 준비한 영상편지가 갑자기 나올 때, 저는 그 무대에서 아이들의 표정을 봤습니다. 아이들이 동글동글해진 눈으로 ‘우리 선생님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눈물을 흘릴까?’ 기대에 찬 눈빛이 느껴졌어요. 너무 행복해 하더군요. 제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니까 아이들도 감동 받고 눈물 흘리는데, 참 짜릿하고 감사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려본 경험이 얼마나 될까요. 순수한 마음으로 저를 대해줄 때 기쁘고 용기가 납니다.

땐뽀반 아이들도 취업을 했고 매년 이맘때면 많은 추억을 쌓은 학생들을 사회로 보내게 됩니다. 이 세상 모든 선생님의 숙명이기도 한 이별의 순간을 지날 때 마음이 어떠십니까?

주사를 아무리 맞아도 맞을 때마다 아픈 것처럼 헤어짐은 적응이 안 되고 늘 슬픕니다. 보통 졸업 시즌이 되면 다음 해에 3학년이 되는 2학년 학생들에게 정 붙이며 적응합니다. 장날 시장에서 사온 낙지로 라면도 끓여주고 고기도 구워먹으면서 3학년이 되는 아이들에게 아부 떠는 거죠.(웃음)

한 번씩 땐뽀반 연습실에 가면 아이들의 모습이 탁 스칩니다. 장난 치고 뒤쫓아가는 모습, 강아지 쓰다듬으며 놀다가 엎어진 아이 생각.(웃음) 전에는 보고 싶어도 그냥 넘겼는데 요새는 평소에 갑자기 ‘잘 있나?’ 하며 연락합니다. ‘쌤~ 많이 보고 싶어요. 어떻게 지내요?’ 하며 답장이 오면 연락하다가 가끔 날 잡아서 만날 수도 있고요.

# 앞으로도 계속 ‘땐뽀’!

맥스무비 인터뷰를 위해 이규호 선생님이 댄스스포츠 의상으로 갈아입고 룸바 댄스를 보여주었다. ⓒ맥스무비 김미애(에이전시 테오)

아이들에겐 ‘땐뽀반’의 경험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규호 선생님의 삶에서도 그런 중요한 전환점을 꼽으신다면요?

사람이 싹 바뀔 때가 있지요. 마음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는 때죠. 저는 어릴 때, 초등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사고를 당해서 수술하고 정형외과에 입원을 했는데, 옆 침대에 50대 아저씨가 입원을 했습니다. 그 분은 양 다리와 팔 한쪽을 잃은 분이었어요. 그런데 평온한 얼굴로 항상 기쁘게 찬송가를 부르시는 겁니다. 궁금해서 물어봤죠. “아저씨는 뭐가 그렇게 기쁘세요?” 그랬더니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친구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겁니다. 자신은 팔다리를 잃었어도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잃지 않아서 너무 감사하다는 거예요.

어린 나이에 그런 고통 속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이해하셨어요?

물론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스물세 살에 아들을 얻었어요. 집에서 반대가 심해서 아들이 두 살 때 아내와 헤어지고 혼자 아이를 키웠습니다. 제가 철도 없고, 힘들었죠. 제가 술을 잘 못 먹는데 하루는 소주 반 병을 먹고 애를 보듬고 진주 고향 다리에 나갔습니다. 강물을 내려다보는데 나쁜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아이 얼굴을 봤는데, 얘가 하품을 하는 거예요. 너무 예쁘더라고요. 다시 강을 쳐다보는데 강물이 빛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도 너무 아름답더군요.

그때 번뜩 그 아저씨 생각이 났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탁 그 말이 떠오르더군요. 내가 손이 없나, 발이 없나,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은데 아들 하나 키우면서 사는 게 뭐가 힘들겠나. 그때 제 삶이 달라졌습니다.

어떤 변화를 맞으셨나요?

임용고시를 봤죠. 서른한 살에 거제도로 학교를 발령받아서 오게 됐는데, 부모님이 초등학생이 된 아이를 두고 가라고 했습니다. 당시엔 혼자 아이를 키우는 아빠가 흉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때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러 가면서, 내 아이도 책임을 못지는 사람이 어떻게 남의 아이들을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아들을 키운 지 20년이 됐습니다. 그 아들이 결혼하면서 제 손을 잡고 “키워주셔서, 같이 지내주셔서 감사합니다”하는 말을 듣고, 포항에서 경주까지 울면서 왔어요. 감동받아서.(웃음) 얼마 전에 손주도 봤습니다. 잘 자라줘서 참 고맙고 자랑스러운 아들이에요.

그렇게 아이를 키우셨던 경험이 학생들을 가르치실 때도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밥 한 그릇을 비벼줄 때도, 아이들에게나 제 아들에게나, 똑같이 맛있게 비벼줘야 맛있게 먹는 거잖아요. 학생들을 보살필 때도 제 자식처럼 대합니다. 말썽피우는 학생이든 모범생이든 집에서는 다 귀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애들이 잘못을 해도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죠. 제가 학창 시절에 ‘아, 이런 선생님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한 대로, 저도 학생들을 벌세우거나 꿇어앉히거나 하지 않습니다. 건성으로 대하는 것과 마음으로 대하는 것은 결과가 달라요. 꽃도 좋은 말을 들려주며 키우면 예쁘게 큰다고 하잖아요.

이규호 선생님에게 댄스란 무엇입니까?

늘 한결같이 지난 20년 동안 함께해준 친구입니다. 힘들 때나 즐거울 때 항상 함께 제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것 같습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댄스 슈즈만 신으면 확 달라져요. 댄스 없으면 사는 낙이 없죠. 우리가 호흡을 하는 것처럼 댄스는 항상 제 곁에 머물러 있을 겁니다.

앞으로 땐뽀반에 대한 선생님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선생님들에게 댄스스포츠를 가르치려고 합니다. 더 많은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댄스스포츠를 지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요즘 거제도의 초등학교 선생님 열 분을 가르치고 있어요. 처음엔 선생님 한 분을 가르쳐주기로 했던 건데, 그 분이 다른 선생님 아홉 분을 데리고 오셨더라고요. 우선 <땐뽀걸즈>부터 보고 오시라고 했습니다.(웃음)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다른 학교로 옮길지 1년만 더 거제여상에 머물지도 고민 중입니다. 공립학교라서 이동을 해야 하거든요. 마음은 여기 더 있고 싶은데, 가만히 있는 성격이 못돼서 몸이 말을 안 듣고 다른 곳으로도 가보고 싶어해요.(웃음)

스스로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학생들을 보는 것이 이규호 선생님의 기쁨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에게서 책임감과 자존감을 배우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순수한 마음을 배운다. 사진 KT&G 상상마당

이규호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승문 감독은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아주 적당한 관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아, 이 이야기 먼저 해야겠습니다. 맥스무비 이승문 감독 인터뷰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좋은 어른이 아니에요. 알고보면 많은 선생님들이 다 그렇게 하십니다. 단지 영화가 나와서 제가 주목을 받게 됐는데, 선생님이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죠.

그럼에도 학교는 여전히 폐쇄적인 사회이고, 교사들에게도 권위주의가 익숙하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변하는 만큼 시대도 변하고, 우리 선생님들도 변해줘야 해요. 지금은 너무 획일적으로 똑같이 공부하고, 고등학교 3학년이 돼면 ‘(대학) 어디갈꼬’에만 신경씁니다. 그러니까 성적에 맞춰 대학 갔다가 자퇴하는 일도 많은 것 같습니다. 모든 학생이 공부 잘한다고 모두 서울대에 가지도 못하잖아요.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저마다 잘하는 일이 있고, 부족한 부분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 좋은 선생님들이 정말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규호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어른은 어떤 사람인지 들려주신다면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좋은 어른 같아요. 문제가 생기면 함께 아파하고, 마음이 동화되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른이라고 해서 애들더러 밥상에서 숟가락을 챙기라고 하지 않고, 선배랍시고 후배를 부리지 않는 겁니다. 애들한테도 “네가 먼저 같이 하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동참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좋은 어른이 되지 않겠습니까.

글 채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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