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무비

감독萬世 | <땐뽀걸즈> 이승문 감독 “사랑은 평등한 거니까요”

‘청춘’이나 ‘고등학생’ 같은 일반명사 틀에 고유한 한 사람을 끼워 맞추지 않은 연출이 다큐멘터리 <땐뽀걸즈>의 성취다. 고통받거나 혹은 영재이거나, 둘 중 하나여야 관심받았던 ‘청소년’이라는 존재를 이승문 감독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존재만으로도 눈물나게 멋지다는 것을.

# <땐뽀걸즈>, 거제의 심장 ‘씨네세븐’에 걸리다

<땐뽀걸즈>를 연출한 이승문 감독 ⓒ 맥스무비 김유찬(에이전시 테오)

이승문 감독은?

KBS 공채 PD 38기로 입사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다. 올해 4월 <KBS 스페설 – 땐뽀걸즈>(KBS1)를 연출하기 전에 성장 다큐멘터리 3부작 <2016 성장다큐멘터리 5월, 아이들>(2016, KBS1)을 연출했다.

현재 <땐뽀걸즈>를 함께 찍은 김훈식 촬영감독과 KBS 파업 현장을 카메라에 기록하고 있다.

<땐뽀걸즈>는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 댄스스포츠 동아리 ‘땐뽀반’ 학생들과 이규호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전국 10개 남짓한 극장에서 개봉 한 달 만에 관객 수 5,000명을 돌파한 <땐뽀걸즈>의 저력은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있다.

SNS 중심으로 확산중인 관객들의 관람 후기는 한 마디로 ‘맑은 느낌’. 반짝이는 눈빛으로 댄스스포츠에 열중하는 땐뽀반 학생들에게 건강한 기운을 얻고, 친구같은 선생님에게 따스한 기운을 느꼈다는 반응이다.

10개 남짓한 상영관에서 개봉해 4주차에 접어들고, 관객 수가 5,000명을 돌파했습니다. 영화의 성취와 비교하면 아쉬운 숫자입니다만, 감독님의 소감은 또 다르실 것 같습니다.  

다 같이 모여서 제가 만든 영화를 보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습니다. 저는 방송 PD라서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받을 일이 없거든요. 제가 만든 영상이 ‘온에어(방영)’되서 무상으로 많은 시청자에게 도달하고는 있지만 말이죠. 영화는 관객과 대화를 하거나 시사회를 할 때 여럿이 같이 앉아서 영화를 보잖아요. 함께 <땐뽀걸즈>를 보는 기분이 무척 행복했습니다.

SNS를 중심으로 <땐뽀걸즈관객 반응이 무척 뜨겁습니다. 땐뽀반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아이들은 SNS에서 <땐뽀걸즈>가 화제인지도 모를 겁니다. 그 친구들은 트위터를 안 하거든요. 네이버 영화 평점은 신경 쓰는 모양이더군요.(웃음) 개봉하기 전에는 아이들이 나쁘게 보이거나 악성댓글로 인신공격을 당할까봐 걱정이 앞섰습니다만, 관객들이 아이들을 지지해주는 분위기라서 다행입니다.

얼마 전 트위터에서 한 관객이 영화에 등장하는 시영 학생을 그려주셨어요. 아이들한테 전달해주니까 좋아하더라고요. 관객 반응 덕분에 저도 아이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뿌듯합니다.

처음 <땐뽀걸즈>의 영화 개봉 소식을 알렸을 때 학생들과 이규호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전화로 얘기하는 게 마음에 걸려서 방송 뒷풀이도 할 겸 거제도에 내려갔습니다. “너희랑 촬영하고 방송을 했는데 마치 긴 예고편을 낸 것 같아서 아쉽다. 피날레를 못한 느낌이다.” 방송한 소감을 솔직하게 말하고, 영화로 개봉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들은 “삼촌이 그렇다면 뭐 해야지” 하고 대답하더군요.

아이들은 개봉 자체보다 ‘씨네세븐’에서 <땐뽀걸즈>가 상영될지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씨네세븐’은 거제시에서 모든 동선이 교차되는 랜드마크, 거제의 심장같은 작은 영화관입니다. 개봉 소식을 알리면서 “(씨네세븐에) 걸릴 수도 있고 안 걸릴 수도 있지”라고 했는데, 실제로 영화가 씨네세븐에서 상영됐습니다. “삼촌, 진짜 거기에 걸면 어떡하냐”고 연락왔어요.(웃음)

학생들이 이승문 감독을 삼촌이라고 부르나요?

네. 호칭은 삼촌. 6개월 제작 기간 중에 같이 지낸 시간을 따져보면 두 달 정도 되는데, 언제부터 호칭이 바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PD님’ 혹은 호칭 없이 대화했거든요. 아마 땐뽀반 여름 MT 장면을 밤새도록 촬영하면서 편해졌나봅니다.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는 얼마 전까지 중간고사 기간이라고 들었습니다. 촬영 당시에 진로를 고민하던 학생들은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겠네요. 주인공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세 명은 취업했어요. 두 명은 조선소로, 한 명은 공단으로 출근한다고 들었습니다. 학교 밖의 사회로 나간 거죠. 다들 강단 있어서 다른 친구들도 금방 취업할 겁니다.

<KBS 스페설 땐뽀걸즈>(KBS1)4월에 방송되고 9월 마지막 주에 영화로 극장 개봉했습니다. 5개월 동안 <땐뽀걸즈>는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쳤나요?

방송이 나간 후 SNS에 올라오는 시청자 반응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방송 다음날 상상마당 배급팀장님이 트위터로 멘션을 보내왔습니다. 연락 받은 다음날 만났는데, 바로 <땐뽀걸즈>를 영화화해서 배급하겠다고 했죠. 사실 <땐뽀걸즈>는 방송보다 영화로 먼저 공개하고 싶었습니다. 4K 화질의 시네마카메라로 촬영했고, 촬영 준비할 때부터  KBS 영화사업팀과 얘기를 나눴어요. 내부 의견이 방송에 충실하자는 쪽이라서 TV를 통해 방송한 거였죠.

53분 분량의 방송 버전에서 덜어냈던 분량과 넣고 싶었던 컷을 추가하고,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손보며 영화화 작업을 했습니다. 처음 <땐뽀걸즈>를 상영한 KT&G 상상마당 음악영화제가 6월 말에 열렸으니 사실 편집 작업은 한 달 만에 끝났습니다. 나름 준비돼 있었던 것 같아요.

# 반짝반짝 빛나는 땐뽀반 학생들

거제도에 있는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의 댄스스포츠 동아리와 그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땐뽀걸즈>. 올해 4월 13일 <KBS 스페셜 – 땐뽀걸즈>(KBS1)로 방송되고 5개월 만에 극장에서 러닝타임 85분의 영화로 개봉했다. 사진 KT&G 상상마당

오프닝에서 땐뽀반 학생들은 수업중인 교실에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으로 첫 등장합니다. 머리 색깔도 제각각이고 음주나 흡연 경험이 있는 친구도 있어요. 학생들을 직접 만났을 때 첫 인상은 어땠나요?

자기가 언제 기쁘고 언제 화가 나는지, 춤출 때는 얼마나 행복한지 다 아는 친구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창시절 저는 오로지 상위권 대학에 가기 위해서 트레이닝 받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제가 언제 기쁘고, 화나는지 모르고 무감각해져있던 거예요. 저는 체벌하면 맞고 묵묵히 자리로 들어가 공부했지만, 누군가는 일어나서 선생님한테 공부하기 싫다고 표현했습니다.

그것을 흔히 반항이라고 표현합니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들은 자기 감정 상태를 잘 아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땐뽀반 아이들도 예민하게 표현한다는 면에서 훨씬 멋졌습니다. 우리나라가 그 표현들을 독려하고 지지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게 슬플 따름입니다.

자신을 예민하게 표현하는 청소년의 모습을 한국에선 잘 볼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프랑스 영화 <클래스>(2010)의 한 장면을 보고 놀란 기억이 나네요. 우리나라 기준이라면 버릇없는 학생들이 등장합니다. 극중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해도 자기 할 일만 하는 학생들을 제지하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신기했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장면은 떠들던 학생끼리 싸우는 장면이었습니다. 한 친구가 몸을 아주 살짝 밀쳤는데 교실이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이더니 “야, 너 너무한 거 아니야?” 하고 웅성대는 겁니다.(웃음)

그 자유로운 교실 안에도 적정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윤리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율적인 환경이 아니라서 모범생 아니면 문제 학생으로만 인식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께는 죄송스럽지만, 계속 힘들어도 학생들을 독려하고 노력하는 일이 선생님의 역할같아요.(웃음)

<땐뽀걸즈>를 일본 청춘영화처럼 만들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부분에 신경을 쓰셨나요? 

빛이 드는 교실의 느낌이나 톤, 아이들이 노곤해 하는 모습을 일본 영화와 비슷하게 담았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경상도 사투리가 일본어 느낌도 나는 것 같아요. 특정 인물이 과장되어 보이거나 비극이 절절하게 나오기보다, 그냥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본 영화와 닮은 것 같습니다. 일본 영화가 캐릭터를 그리는 관점이 저와 비슷한 것 같았고, 그렇게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 청춘 영화는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워터보이즈>(2002)<스윙걸즈>(2006), 최근 개봉한 <치어댄스> 등 동아리 소재 영화가 많죠. 혹시 레퍼런스 삼은 영화가 있나요?

평소에 <린다 린다 린다>(2006) 스타일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영화는 보지 않았습니다. 도입부는 단조로워서도 밋밋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다큐멘터리니까 극영화보다 투박할 수 있겠지만, 일본 영화보다는 조금 더 밀도 있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복도를 가득 채우는 웃음소리처럼 현장감 있는 소리를 채우려고 했습니다.

# 사랑할수밖에 없는 어른, 이규호 선생님

이승문 감독이 이규호 선생님을 보며 “좋은 어른이란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언제든지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가르침을 얻었다. 사진 KT&G 상상마당

영화에 천 원 지폐 다발을 든 이규호 선생님이 땐뽀반 학생들에게 차비를 나눠주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우연히 거제여상에 갔을 때 본 모습이라고요. 

느낌이 좋았어요. 어둑어둑 해가 져무는 시간에 학생들은 가방 매고 ‘출레출레’ 학교를 나가고 있었고, 체육관 쪽에서는 이규호 선생님이 천 원짜리 다발을 들고 나오는 겁니다. 아이들한테 ‘(환승) 두 번? 한 번?’ 하면서 차비를 나눠주는 모습을 보는데, 처음 접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 단어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느낌이었어요. ‘이 관계는 도대체 뭘까?’ 궁금해서 다큐멘터리까지 만들게 됐습니다.

<땐뽀걸즈>에서 이규호 선생님과 땐뽀반 학생들의 관계는 단연 인상적입니다. 선생과 제자 관계인데 굉장히 수평적입니다. 학생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이규호 선생님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동아리 선생님이든 진학 담당 선생님이든 직업이 선생님인 분에게 학생들은 ‘업무의 대상’일 겁니다. 그런데 이규호 선생님에겐 학생들과 함께하고  춤추는 게 행복하고 중요한 시간인 겁니다. 아이들에게 그 시간이 좋고 중요한 것처럼 선생님도 마찬가지인 거죠.

그래서 평등한 사제 관계가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 결과로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자연스럽게 편한 태도가 나오는 거죠. ‘저 사람에게 제일 소중한 게 내게도 소중한 관계’ 즉 이들의 사제관계는 ‘사랑하는 사람들’에 가깝습니다. 사랑은 평등한 거니까요.

이규호 선생님을 보면서 이상적인 어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까이 지켜보면서 ‘좋은 어른’에 관한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촬영기간 동안 저도 땐뽀반 친구들에게 삼촌으로 불리면서 ‘이 사람들과 나는 어떤 관계지? 어떻게 해야 되지?’라는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 ‘좋은 어른’이라는 단어는 ‘인권 변호사’란 단어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법은 인권을 위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사실 모든 변호사가 인권 변호사죠. 좋은 어른이라는 의미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어른이란 무엇인지 계속 고민할 때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선 어떤 태도가 가장 필요할까요?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아주 적당한 관심 같아요. 이규호 선생님은 아이들의 사연을 일일이 묻지 않습니다. 가정사를 몰라도 아이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데에 지장이 없죠. 반대로 아이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는 ‘내가 제일 먼저 달려갈 거야’ 라는 합의가 이미 있습니다. 이 순서가 맞는 거죠.

대개 어른이랍시고 자꾸 캐물으면서 아랫사람의 상황을 짐작하고,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따르라고 가르칩니다. 어른은 우월적인 지위가 아니라 ‘그냥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건 언제든지 준비하고 있을게’라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 아이들은 누구나 박수받을 수 있다 

<땐뽀걸즈>의 주인공들은 보통 TV 다큐에서 봐 온 문제아나 영재가 아닌, 고등학교를 다니는 평범한 아이들이다. 영화는 이 소녀들을 통해 공부에 관심이 없어도 아이들은 “무언가 잘 할 수 있고 박수 받을 수 있는다”는 걸 빛나게 보여준다. 사진 KT&G 상상마당

이전에 한 인터뷰에서 미디어에서 여성의 대상화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땐뽀걸즈>를 촬영하면서 특별히 주의한 점이 있다면요?

저와 김훈식 촬영감독은 ‘우리가 본 것 그대로 담자’라는 게 목표였습니다. 제가 남자고등학교를 나온 탓인지, 열여덟 살 여성 청소년들의 심리, 삶, 특성화고등학교에 대해서 실제적인 상에 대해 프로토 타입이 전혀 없었거든요. 촬영 자체가 발견의 과정이었고, 편견 없이 편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여성 청소년에 대한 부분은 오히려 관객들이 잘 해석해주고 영화의 위치를 잡아주었습니다. 그동안 청소년들은 문제아거나 영재여야 TV에 나왔던 것 같습니다. ‘평범한 친구들을 방송에서 보여준 적 있었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윤리의식을 내세워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도는 없었지만, 관객 반응을 보고 미디어 종사자로서 반성했습니다.

영화에서 이규호 선생님은 애들 사람 만들어서 졸업시키는 게 우리 임무라고 합니다. 땐뽀반이라는 동아리 활동의 필요성과 의의를 짚어주는 말처럼 들립니다. 

동아리 안에서 학생들의 관계는 선생과 제자, 공부 잘하는 친구와 못하는 친구 등 교실 안의 관계와 다르게 재편되는 것 같습니다. 구성원이 똑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동아리의 특성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규호 선생님 말씀은 공부에 관심이 없더라도,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잘 살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일 겁니다.

한번 ‘난 낙오자야. 대충 살지 뭐’라고 단념해버리면 훗날 많은 상처에 노출될 수 있는 삶,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삶을 살게 될 가능성도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동아리 활동이 더욱 필요한 것 같습니다. “넌 무언가를 잘할 수 있고 열심히 하는 사람, 무대에 오를 수 있고 박수 받을 수 있는 사람이야.” 동아리 활동이 이런 느낌을 갖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이승문 감독은 “앞으로 인간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트위터() 프로필에는 시인 프란시스 잠의 시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의 시구가 써 있다. ‘즐겁게 노는 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소소하지만 인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겠다는 뜻이다. ⓒ맥스무비 김유찬(에이전시 테오)

<땐뽀걸즈>는 쇠락하는 거제도 조선 산업을 담으러 갔다가 소재를 바꾼 결과라고 들었습니다. 평소에 다큐멘터리 소재는 어떻게 찾는 편인가요?

저는 ‘가보자’ 주의입니다. 이슈가 있는 곳에 가서 우연히 발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다큐멘터리인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이 계속 바뀌는 현장에서 좋은 다큐멘터리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 현장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담을 때, 전형적인 것보다 ‘내 생각이 틀렸구나’는 걸 깨닫게 하는 다큐멘터리를 좋아합니다.

처음 생각에서 방향을 틀면, 해도 될지 확신이 안서고 제작자로서 굉장히 두렵습니다. <땐뽀걸즈>를 택한 것도 선배들과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긴 합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이 가져야 할 미덕 중 하나가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용기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방송 다큐멘터리와 다큐멘터리 영화는 콘텐츠의 특성도 조금씩 다릅니다. 특히 우리나라 방송용 다큐멘터리는 내레이션으로 정보를 설명하는 방식이 마치 필수 요소처럼 고착화된 것 같기도 합니다. <땐뽀걸즈>에선 방송 다큐와 영화 다큐의 경계를 허물고 싶은 바람이 읽혔습니다.  

방송과 영화의 경계를 허무는 일은 제 생계와 관련된 일이기도 합니다. 공영 방송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 세상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아주 이상적인 일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방송 다큐멘터리 영역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도 안 봐요. 꼭 다큐멘터리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다시 방송을 보게 해야 할 책무가 저에게 있습니다. 다양한 방법 중 하나는 기존의 작법과 화법을 과감하게 벗어던지는 겁니다.

지금 이승문 감독이 동참하고 있는 KBS 파업의 이유와 이어지는 이야기 같습니다.     

회사는 ‘공영방송, KBS 1TV가 최고야’라는 허울이 있죠. 모든 연령대, 모든 시청자들을 위한 방송을 목표로 삼지만, 실제로 조사하면 60대~70대 남성들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요. 제가 지금 동참하고 있는 KBS 파업도 그런 문제를 타파하기 위함입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2030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부터 만들어볼 수 있는 거죠. <땐뽀걸즈>가 관객 수 5,000명이 넘었다고, 회사에서 어떤 성과물로 평가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 오르지도, 대단히 큰돈을 벌지도 못했지만, SNS 한켠에서 밀도 높게 반응을 일으키는 콘텐츠인 거잖아요.

KBS의 제작진이 이런 종류의 콘텐츠와 소비 문화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되게 슬퍼요. 너무 늦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제라도 시도해야합니다. KBS가 앞으로도 이대로간다면 패할 것이고, 그렇다면 장렬하게 전사하면 됩니다. 회사가 망하면 처음부터 다시 세워 가야죠. 그래도 버림을 받으면 그것 역시 대중의 선택이죠. KBS 파업과 정상화에 대해선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절박한 심정입니다.

앞으로 이승문 감독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시인 프란시스 잠의 시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에 ‘즐겁게 노는 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이라는 시구가 있어요. 사회의 악을 캐내고 추적하거나 혹은 너무나 기록이 필요한 현장을 끊임없이 기록하는 것도 다큐멘터리의 큰 역할입니다. 하지만 저는 소소하거나 사람들이 보지 않았던 곳에서 소재를 찾고 싶어요. 인간적인 이야기요. ‘돛단배 탄 사람이 바람의 방향은 못 바꿔도 돛의 방향은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일을 낑낑거리며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늘 재밌습니다. 인간답게 살아가는, 멋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을 겁니다. 이규호 선생님도 그런 분이고요.

+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 프란시스 잠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 병에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밀 이삭들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들을 베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어린 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베틀을 짜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리고 따뜻한 달걀들을 거두어들이는 일.

+ <땐뽀걸즈>와 함께 보면 좋은 영화

새 학기가 시작한 9월, 프랑스 선생님 마랭(프랑소와 베고도)은 설렘과 긴장을 안고 수업을 시작하지만, 좀처럼 대하기 쉽지 않은 아이들을 만난다. 사진 영화사 진진

<클래스>(2008)

감독 로랑 캉테 | 출연 프랑소와 베고도, 프랭크 케이타, 에스메랄다 우에르타니

자유로운 교실 안에도 윤리가 있다고 말한 이승문 감독은 로랑 캉테 감독의 <클래스>(2010)를 떠올렸다. 다국적, 다인종 학생들이 섞여 있는 도시 빈민가의 한 고등학교가 배경인 <클래스>는 고루한 교육관을 탈피해보려는 프랑스어 열혈교사 마랭(프랑소와 베고도)과 개성 넘치는 학생들이 전쟁의 연속인 수업 시간에 갈등을 겪다가 서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마랭을 연기한 소설가 프랑소와 베고도의 동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혼합해 진정성을 담은 실험적 극영화다. 교육 현장의 고민을 생생하게 담아내며 작품성을 인정받고 61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 <땐뽀걸즈> 5,000명 돌파 기념 ‘땐뽀반’ 미공개 대회 영상

글 채소라

※ 감독만세(萬世)는 맥스무비의 감독 전문 인터뷰 코너입니다. 감독의 만 가지 세상, 만 명의 감독을 만날 때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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