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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 김인우 “배우로서의 사명감, 진실을 전하는 것”

<암살>(2015), <동주>(2016), <박열> 그리고 <군함도>까지, 일제강점기를 시대 배경으로 삼은 한국 영화를 모두 본 관객이라면 각기 다른 일본인 캐릭터로 같은 얼굴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재일교포 3세이자 진실을 전해야 한다는 강한 사명으로 연기하는 배우 김인우다. “나는 한국인”이라 힘주어 말하는 그의 바람은 한국에서, 한국어로, 관객과 희망을 나누는 것이다.

영화 <깡철이>(2013)는 김인우를 최동훈 감독과 이준익 감독에게 이끌었다. 그 인연이 다시 류승완 감독에게로 이어져 일본인 악역의 대표 주자가 탄생했다. ⓒ 맥스무비 김미애 (에이전시 테오)

<동주> <박열><군함도>까지 연달은 일본인 악역으로 눈도장을 제대로 찍은 것 같습니다. 주변 반응이 서서히 달라지고 있을 것 같은데요? 소속사까지 생겼고요. 

이제는 길에서 조금씩 알아봐주시는 것 같긴 합니다. 전에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는데, 동네에서 밥 먹고 집에 들어가는 중에 한 분이 막 뛰어오셔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더군요. 어떤 분은 욕을 하면서 멱살을 잡기도 했고요.(웃음) 좀 당황하긴 했지만, 역할이 역할인지라 그런 반응 이해합니다. 그만큼 배우로서 인정받은 것 같아 감사하기도 하고요. 특히 소속사가 생긴 게 참 편하고 좋네요. 혼자 움직이는 데는 한계가 있거든요. ‘열심히 연기하다 보면 언젠간 내게도 연락이 오겠지’라는 희망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최근 한국 대표 감독들과 연달아 작업했습니다. 류승완 감독은 이준익 감독의 소개로 만났다던데 이준익 감독과 첫 만남은 어떻게 이뤄진 건가요?

웃긴 기억인데,(폭소)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는 대뜸 자기가 이준익 감독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속으로 “이 사람, 장난 하네” 그랬습니다. 배우를 섭외할 때 감독이 직접 전화하는 경우는 별로 없으니까요. 시간 있냐면서 만나자고 하길래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나갔더니, 정말 이준익 감독님이 나와있었습니다. 그때 홍대 쪽에 살고 있었는데, 거기까지 직접 오셨어요. <깡철이>(2013)를 보고 저를 섭외하고 싶다고요. 생각해 보니 최동훈 감독도 <깡철이> 때문에 저를 <암살>(2015)에 캐스팅한 거였죠.

<깡철이>가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나게 해줬네요.

네. <깡철이>가 제 한국 생활의 어떤 기점이 된 것 같습니다. 출연 분량이 많지도 않았는데 감독님들 눈에는 좋게 보였나 봅니다.

같은 소재지만 <박열>은 저예산 영화였고 <군함도>는 블록버스터였습니다. 이준익 감독과 류승완 감독의 작업은 각각 어떻게 달랐을지 궁금하비다.

이준익 감독은 늘 대화를 많이 하시는 분입니다. 감독님이 상상하는 그림은 무엇이고 제 고민은 무엇인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방향을 잡는 거죠. 거의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류승완 감독은 역할에 대한 뚜렷한 색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감독이 원하는대로 잘 따라가면 되는 것이고요. 어렸을 때 연기 스승님한테 “연기자는 감독의 색깔을 따라가라. 자기주장을 우선하지 마라”고 배워서 맞추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연달은 악역에도 불구하고 김인우는 배우로서의 이미지보다 역할에의 몰입과 연기적 성장이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 맥스무비 김미애 (에이전시 테오)

<동주>의 고등형사와 <박열>의 미즈노 렌타로, <군함도>의 시마자키 다이스케 모두 조선인 학살을 주도하는 캐릭터입니다. 배우이자 한 인간으로서, 캐릭터에 대한 양가적 감정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악역을 좋아하긴 합니다. 평범한 역할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지만, 제 성격과 반대되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더 몰입이 잘 되거든요. 저와 똑같은 사람보다는 좀 다른 사람이 눈에 잘 보이고, 관찰하게 되고, 연기로 가져옵니다.

하지만 연기의 문제를 떠나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반발심은 분명 가지고 있었죠. 어렸을 때 할아버지께 한국의 역사를 배웠습니다. 마음에 깊은 한이 남더군요. 제가 역사영화에 출연하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막상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몰랐던 사실까지 알게 되어서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 악역에 몰입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일단 촬영 들어갈 땐 개인적인 감정을 싹 지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기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기도 하죠.

재일교포로서 감회가 더 남달랐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분명 한국 사람이고, 진실은 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입장, 한국 입장이라는 것을 떠나서 제국주의의 만행은 ‘사람’으로서 씻을 수 없는 죄였죠. 관객이 어느 나라 사람이든 저는 역사영화를 통해 그 진실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역사영화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 저는 배우로서 사명감을 느낍니다. 또 일본은 그때의 수많은 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꼭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한편으론 비슷한 역할을 여러 번 반복하면 배우로서 특정 이미지에 갇히거나 연기 스펙트럼이 좁아질까 우려할 법도 한데요.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합니다.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보일까’가 아니라 ‘무엇을 전달할까’이지요. 역할을 충실히 연구하고, 역할에 잘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렇지 않고 배우가 자기 이미지를 먼저 생각하면 안 되지 않을까요?(웃음)

각 캐릭터의 차이를 더욱 예민하게 찾아야 하는 어려움은 있겠습니다.

일단 역할이 주어지면 인물에 대한 백 가지 사실을 정리하면서 캐릭터 색깔을 만들어 나갑니다.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고, 당시 어떤 사건이 벌어졌고, 어머니는 누구고 등등. 하나씩 디테일하게 정리할수록 그 색깔이 뚜렷해집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답이 안 나오는 상황에서는 캐릭터에 저를 대입시키죠. ‘만약 김인우가 그 시대에 태어나 그 사건을 겪는다면?’이라고 가정하기 시작하면 도움이 됩니다.

 

영화 <집으로>(2002)는 그가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절망에 몸부림치던 그를 따뜻히 안아준 그의 ‘인생영화’인 셈이다. ⓒ 맥스무비 김미애 (에이전시 테오)

일본에서 쭉 배우로 지내다가 나이 마흔 즈음에 한국에 왔습니다. 왜 하필 그 시점에 한국 활동을 결심했는지 궁금합니다.  

인생의 바닥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 때가 그런 시기였습니다. 허리디스크가 오고, 사고로 아킬레스건이 끊어지고, 겉만 다친 줄 알았더니 속도 많이 상했더군요. 전반적으로 몸이 너무 안 좋았어요. 의사가 “당신 정말 위기였다”고 말할 정도였죠. 가뜩이나 가족도 없는데 마침 10년을 사귄 애인과도 헤어지고, 배신으로 친구도 잃고, 돈도 없고. 말 그대로 저한텐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 중에 단 하나만이라도 있었다면, 아마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았을 텐데.

멍하니 앞길 막막하게 살다가 우연히 한국 영화들을 보고 펑펑 울었어요. 거기에서 치유를 많이 받았죠. 처음에 <파이란>(2001)을 보고 한국 작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집으로>(2002)를 본 후에는 아예 한국에 와야겠다고 마음을 굳혔어요. 세상에 저 혼자 밖에 없는 것처럼 외로웠거든요? 근데 그 영화가 저를 안아줬어요. 마치 어머니처럼요. 그 순간 한국에 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재일교포라는 점 때문에 일본에서 차별 받았던 영향도 있을까요? 

차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 자체가 중요한 원인은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항상 있는 일이라, 이제는 극복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일본에서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안 하고 있잖아요. 역사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저를 오해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아는 분들은 안 그래요. 무엇보다도 재일교포라는 신분 때문에 배우로서 받는 불이익도 없었고요.

갑작스러운 한국행이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용기를 내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다면요?    

물론 처음엔 두려웠어요. 갈까 말까 고민만 거의 3년을 했죠. 하지만  50대가 됐을 때 시작하는 것보다는 지금 시작하는 게 더 낫겠다 싶었어요. 물론 인생 어떻게 될지 몰라요. 한국에 간다고 행복하리란 보장은 없었지만, 하고 싶은 걸 못했다고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생활이 그렇게 어려웠는데도 연기를 관둬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나봐요.  

배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특별한 계기가 있었으니까요. 고등학교 때 폭행 사건이 터졌는데 제가 억울하게 누명을 쓴 적 있어요. 그것 때문에 굉장히 마음이 괴로웠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이 참 많았죠. 그 후 얼마 뒤에 극장에서 우연히 <의혹>(1982)이라는 영화를 봤어요. 주인공이 무죄인데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내용이에요. 주연을 맡았던 여배우가 법정 신에서 막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치는데 충격을 받았어요. 그 연기가 정말 진짜처럼 보였거든요. 그 때 처음으로 배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이후 20대 초반에 연예기획사에서 스태프 일을 했는데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근무였고, 퇴근 후엔 긴자에 있는 바에서 또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악착같이 하루 16시간을 일한 셈이죠. 일이 끝나면 집 근처 강에 가서 연기 연습을 하고 돌아오곤 했어요. 어느날 밥을 먹으려고 보니 쌀통에 쌀이 없더라고요. 돈은 물론 없고요. 배가 고파서 소금을 핥고, 수돗물을 마셨어요. 순간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군요. 가족이 없으니 어디 기댈 곳도 없고, 그냥 억울했어요. 슬프다기보단 억울한 마음이 더 크더라고요. 그런데 그 순간 ‘아, 나는 절대 배우의 꿈을 포기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스쳤어요. 그때의 기억이 아직까지도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 같아요.

삶의 결정적 순간엔 늘 영화가 있었네요.

네, 그런 셈이죠.

김인우는 한국에 오면서 배우로서의 새로운 사명감을 찾았다고 말한다. 자신만을 위한 연기가 아닌, 관객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줄 수 있는 연기로 카메라 앞에 서고 싶다는 바람이다. ⓒ 맥스무비 김미애 (에이전시 테오)

한국 생활은 어떠세요? 기대했던 것과 많이 다르진 않나요?  

한국과 일본은 일하는 스타일도 다르고, 장점도 다른 것 같아요. 일본 사람들이 친절하고 배려심 있다면, 한국 사람들은 정이 깊죠. 촬영장 돌아가는 것도 많이 달라요. 일본은 정해진 촬영 계획과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반면 한국은 스케줄에 유동성이 있잖아요. 추가적으로 찍는 신도 많고, 대기 시간이 한참 길어질 때도 있죠. 아, 개인적으로 신분증이 제 2외국인으로 되어 있는 점은 솔직히 좀 섭섭해요. 남자는 뒷자리가 1로 시작하는데 저는 처음에 5로 찍혀있었어요. 지금은 1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제 2외국인 신분인지 은행 갈 때도 절차가 복잡하더라고요. 완벽히 한국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지는 못한 거죠.

한국에 온 후 벌써 서른 편 정도의 작품에 출연했는데, 그 중 한국인 역할은 딱 한 번이었어요. 언젠가 김인우 배우가 한국인 캐릭터를 어색함 없이 소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간절한 바람이죠.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일본인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알려지고 싶었어요. 다행히 지금 그런 역할로 잘 섭외가 되고 있지만, 저 역시 계속 일본인 역할만 해서는 배우로서 한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여기는 한국이고, 저는 한국인이니까요. 주변 도움을 받아서 한국어 공부 계속 하고 있긴 해요. 아, 윤종빈 감독의 차기작 <공작>에서는 재일교포 역이라 일본어도 하고, 한국어 표준어도 하고, 부산말도 합니다.(웃음)

부산 사투리 연기라니 엄청 기대됩니다. 맛보기로 보여주실 수 있나요?(웃음)

“밥 묵었나?!” 사투리가 표준어보다 편한 것 같아요.(웃음) 억양이 일본어와 비슷하거든요.

한국에 와서 연기한 캐릭터 중에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를 꼽아본다면요? 

음, <식객: 김치전쟁>(2010)에서 일본 수상 역을 맡았었는데 생각보다 어색함 없이 나와서 좀 놀랐어요. 현장에서 찍을 때는 엄청 못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편집해놓은 걸 보니 괜찮더라고요. 제가 연기를 잘 했다는 건 아닌데, 걱정을 유독 많이 했어서 그런지 기억에 남아요.

가장 최근작인 <군함도>와 <박열> 속 자신의 모습을 본 소감은 어떻던가요?  

제 연기에 대해서는 좀 아쉽죠. 욕심일까요? 특히 <군함도>의 경우 외할버님께서 그 시절 탄광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세요. 군함도에 징용됐던 건 아니지만 처한 상황은 비슷했대요. 그래서 관련된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제가 연기할 때 더 잘 했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주변에선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시지만, 개인적으로는 반성해야 하고 부족한 점도 살펴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 계속 배우 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가요?

일단은 건강이죠. 그리고 한국에 들어오기 직전에 깨달은 게 하나 있는데, 내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는 거예요. 여태까지는 나를 위해 배우를 하려고 했는데, 문득 나 아닌 타인을 위해서 연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인생이 <집으로>라는 작품으로 인해 바뀐 것처럼요. 배우라는 직업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행복을 주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그때 절실히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지금은 제가 그런 사명을 가지고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해요.

글 차지수

※ 너의 이름은 | 맥스무비의 새로운 배우 인터뷰 기획입니다.  여러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낸 배우들을 집중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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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너의 이름은 | 김인우 “배우로서의 사명감, 진실을 전하는 것”

  1. ^^선선한 가을바람이 일찍 시작 되었네요 개인적으로 엄청나게 바쁜 여름을 휴가 없이 쉼없이 달려와서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우연찮게 이런 이벤트를 알고 응모해봅니다
    좋은 기회를 주시면 행복하게 가을을 맞이하고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 선선한 가을바람이 일찍 시작 되었네요 개인적으로 엄청나게 바쁜 여름을 휴가 없이 쉼없이 달려와서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우연찮게 이런 이벤트를 알고 응모해봅니다
    좋은 기회를 주시면 행복하게 가을을 맞이하고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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