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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기 |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블레이드 러너>의 꿈을 꾸는가?

리들리 스콧 감독이 자신들의 전작들을 부활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메테우스>에 이어 5년 만에 <에이리언> 리부트 시리즈를 잇는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리들리 스콧의 또 다른 걸작 <블레이드 러너>와 이어진다.

<프로메테우스>에 A.I 데이빗을 연기했던 마이클 패스벤더는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 A.I 데이빗과 월터 1인 2역을 맡았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역사상 최악(!)의 로봇을 뽑는 경연이 펼쳐진다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는 단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컴퓨터 ‘할 9000’이다. 할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공학 3원칙’을 조롱하듯이 고약한 소동을 일으키고 인간에게 끔찍한 공포를 선사한다.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A.I. 데이빗(마이클 패스벤더) 역시 이에 못지않은 악마성을 지녔다. 지적이고 교활한 존재다. 데이빗의 악취미와 눈부신 활약상은 이미 <프로메테우스>(2012)에서 검증되었다.

의도적으로 엘리자베스 쇼(누미 파라스) 박사에게 미지의 생명체를 임신시킨 장본인이니, “쇼 박사를 사랑했다”는 식의 말랑한 멜로드라마적 수사에 현혹돼선 곤란하다. 엄밀히 말해 데이빗은 인간에 충실한 <에이리언 2>(1986)의 로봇 비숍과는 거리가 있다. 에이리언을 무기화하겠다는 발상은 인간의 허영이었고, 비숍은 이를 따르는 수행자에 불과했다.

에이리언의 탄생을 꿈꾸는 자들

<에이리언> 시리즈의 첫 번째 리부트 <프로메테우스>(사진)는 에이리언의 탄생을 다룬다. 에이리언의 탄생을 꿈꾸는 자는 다름아닌 A.I 데이빗이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에이리언 월드’의 창조주 리들리 스콧 감독은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커버넌트>를 통해 에이리언의 전사(前史)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겠다고 출사표를 던졌지만, 그의 야심과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다. 리들리 스콧이 <에이리언 4>(1997)로 종지부를 찍었던 시리즈를 부활시킨 것은 단순히 에이리언의 기원을 좇기 위함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언캐니’를 불러일으키는 존재, 에이리언에 대해 충분히 체험했다(1979년부터 우리와 공생했다).

에이리언에게 숭고함과 두려움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순수한 미지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즉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경외감이나 공포심이 조성된다. <에이리언> 시리즈는 에이리언이 일으키는 즉물적인 공포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욕망을 투영하는 거울로 이 생명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한마디로 에이리언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이 재앙을 초래하는 원동력이었다.

반면 인류의 기원을 찾아 나선 <프로메테우스>는 인류가 티탄 족 같은 외계인(엔지니어)과 조우하는 동시에 궁극적으로 에이리언의 탄생을 목격하게 만든다. 이는 충격적인 원초경(부모의 성관계 목격) 같은 장면이다. 이 영화의 화두인 인류의 근원 탐구나 유사 정신분석적인 접근을 잠시 잊는다 해도, 한 가지는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에이리언의 탄생을 꿈꾼 것은 인류의 선조를 찾기 위해 우주 탐사를 실현한 피터 웨이랜드(가이 피어스)나 고도의 문명을 자랑하는 엔지니어가 아니라 A.I. 데이빗이라는 점이다.

에이리언의 수호자, A.I 데이빗

<프로메테우스>(사진)에 처음 등장한 A.I 데이빗은 스스로 에이리언의 창조주가 되고자 한다.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 데이빗의 복수와 반란의 증거를 목격할 수 있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데이빗은 이미 <프로메테우스>에서 완벽한 생명체, 에이리언에 집착했다. 데이빗은 에이리언과 교감을 나누고 싶어 한다. 그는 인간이 자신을 만들었듯이 스스로 에이리언의 창조주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그 이유와 과정을 친절하게 보충 설명하는 에피소드로 봐도 무방하다. 급기야 데이빗은 입에서 에이리언의 배아를 뱉어내니, 에이리언의 굳건한 수호자나 다름없다.

돌이켜 보면 데이빗은 지구인의 선조인 외계인(엔지니어)과 인간의 유산을 모두 물려받은 존재다. 그는 엔지니어의 언어를 완벽히 습득하고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를 보면서 대사를 흉내 낸다. 외계인과 인간의 소통을 위한 연결고리로 기능하지만,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심지어 엔지니어는 그의 머리를 뽑아버린다).

결과적으로 데이빗은 이들을 향해 반란을 꿈꾼다. 데이빗은 신이 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탐욕적인 속성을 빼닮았고, 이런 복수와 반란의 증거는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숨겨진 진실에서 찾을 수 있다.

<에이리언>A.I<블레이드 러너>의 리플리컨트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A.I 데이빗과 월터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작 <블레이드 러너>의 리플리컨트(사진)를 떠올리게 한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미지의 행성에서 A.I. 월터가 분신 같은 동료 A.I. 데이빗과 만나는 순간이다. <프로메테우스>에서 우주선을 조종하기 위해 엔지니어가 리코더를 불던 것처럼 데이빗은 월터에게 리코더를 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놀랍게도 데이빗은 월터에게 “넌 꿈을 꾸느냐?”라고 질문한다.

이 꿈에 대한 질문은 바로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1982)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해리슨 포드)는 유니콘이 등장하는 환상적인 꿈을 꾼다(리플리컨트의 꿈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데커드 역시 리플리컨트라는 암시가 담겨 있다).

물론 데이빗에게 꿈은 자신이 창의적인 존재라는 것을 입증하는 하나의 증표이다. 그는 엔지니어나 인간과 맞먹는 창조자를 욕망하고, 이를 실현하는 은혜로운 결과물이 바로 에이리언이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식으로 답한다면, 그가 생각하는 ‘꿈’은 사실 자신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꿈을 이식하고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 선택받은 인간의 우월성, 바그너를 듣는 권력의지를 복제했을 뿐이다.

데이빗은 제한된 수명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블레이드 러너>의 리플리컨트 로이(룻거 하우어)의 또 다른 버전이다. 로이가 자신의 아버지인 타이렐 박사를 죽이는 것처럼 데이빗은 인간을 기꺼이 실험대상으로 활용한다. 재미있는 것은 인간의 정서적 욕구를 제외한 인공지능이라고 자부하는 월터가 오히려 데이빗의 유혹(정체성을 건드리는 질문)에 흔들린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월터는 로이 일당과 싸움으로 혼란에 빠진 데커드와 닮은꼴이다. 만약 그간 <에이리언> 시리즈가 보여준 것처럼 행성과 종족을 넘어서는 하이브리드적인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데이빗의 출현은 외계인과 인간, 인간과 로봇 등의 경계를 허물어트리는 새로운 사건으로 읽을 수도 있다.

리들리 스콧의 존재 탐구는 이어진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자신이 창조한 <에이리언> 시리즈를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완성하고 있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리들리 스콧이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커버넌트>를 통해 에이리언의 시원에 다가서는 동시에, 인간과 A.I. 로봇의 관계를 거쳐 <블레이드 러너>의 화두 ‘나는 누구인가?’와 다시 접속한다는 점이다.

이렇듯 팔순의 노장 리들리 스콧에게 존재에 대한 근원적 탐구는 평생의 과제이자 아직 끝나지 않은 긴 여정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드니 빌뇌브 감독 <블레이드 러너 2049>로부터 들어야 할 화답(35년 만의 속편)을 <에이리언: 커버넌트>에게 미리 듣는 행운을 누렸는지도 모른다.

 

글 전종혁(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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