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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질라> 리뷰 | 뼛속까지 정치적인 괴수물

<신 고질라>는 1954년판 <고질라>의 울음소리로 시작한다. 미디어캐슬

영화사 도호의 제작사 로고와 함께 괴수의 포효가 울려 퍼진다. 이것은 할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1954년판 <고질라>의 울음소리를 재현하는 사운드만으로, 드디어 일본산 고질라가 귀환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강렬한 진동을 느끼고 바로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면 당신은 고질라의 마니아가 분명하다. 이 리뷰를 읽는 대신 신 고질라 피규어 구입에 사력을 다하면 된다. 1984년판 고질라와 달리 ‘붉은 몸통’과 ‘길게 치솟은 꼬리’를 지닌 고질라에 반할 것이 분명하다. 만약 심드렁하다면 괴수물이나 특촬물을 경험하는 차원에서 만족해야 할 수 있다.

후자의 관객이라면 “크기가 문제”라고 말하던 롤랜드 에머리히의 <고질라>(1998)나 고질라의 숭고함을 생생히 전해주는 가렛 에드워즈의 <고질라>(2014)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 맞다. <신 고질라>는 태생적으로 호불호가 크게 나뉠 수밖에 없는 영화다.

<고질라> 시리즈의 레퍼런스로 중무장한 이들에게는 ‘아는 만큼 즐기는’ 노하우의 영화겠지만, 굳이 고질라와 세계관을 공유해야 할 이유가 없는 세대에게 이토록 생소한 생명체도 없다. 더욱이 고질라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일이 없는 걸 고려한다면, 참으로 불친절한 생명체라고 할 수 있다.

<신 고질라>에 등장하는 고질라는 바다의  핵폐기물 속에서 성장한 돌연변이로, 바다에서 육지로 상륙하면서 무섭게 성장하고 진화한다. 사진 미디어캐슬

<신 고질라>를 1954년 오리지널 버전과 비교하자면, 여러모로 변화가 있다. 오토 섬의 전설에 등장하는 오리지널 버전의 괴수는 1954년판에서 인간의 수폭 실험으로 깨어난 후 수중 산소를 파괴하는 옥시전 디스트로이어로 죽임을 당한다.

반면 ‘신 고질라’는 바다의 핵폐기물 속에서 성장한 돌연변이로, 바다에서 육지로 상륙하면서 무섭게 성장하고 진화한다. 과학자들은 핵폭탄이 무의미하다는 진단 하에 고질라의 입에 혈액 응고제를 투여해 굳혀 버리는 방법을 선택한다. 또한 ‘신 고질라’의 사이즈가 업그레이드된 점이나 방사능 열선을 입뿐만 아니라 등과 꼬리에서 자유자재로 쏠 수 있다는 것이 특이점이다.

이렇듯 고질라에 대한 이모저모를 열거하는 것이 괴수물의 쾌감이긴 하지만, <신 고질라>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쓰나미의 공포(방사능에 대한 불안)를 건드리는 동시에 뼛속까지 정치적이라는 것이 더욱 놀랍다.

<신 고질라>에서 총리가 주재하는 긴급회의는 정치공학적으로 명분과 실리를 추구하는 정치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사진 미디어캐슬

한마디로, 안노 히데아키와 히구치 신지 감독의 <신 고질라>는 고질라가 출현하자 탁상공론식으로 대책을 마련하는 정부 관료들의 설왕설래에 더 방점을 찍고 있다. 총리가 주재하는 이 긴급회의는 정치공학적으로 명분과 실리를 추구하는 정치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이 대책 회의가 유사 다큐멘터리처럼 강박적으로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반면, 도쿄 한복판을 초토화시키는 고질라는 전통적인 특촬물의 방식(비현실성)을 그대로 고수한다. 정치의 세계와 괴수물의 세계는 서로 이질적으로 충돌하면서도, 정서적으로는 기묘하게 양립한다.

어쩌면 현실의 정치이든 초현실의 괴수물이든 극렬하게 ‘폭주’한다는 차원에서 동일한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이 동일본대지진의 피해자들에 대한 애도와 삶의 복원이라면, 도시를 테러하는 핏빛 <신 고질라>는 그런 재난이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다. 2016년, 두 영화는 양극단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일본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진단하고 희망을 이야기한 셈이다.

그럼에도 변치 않는 사실이 있다. <고질라> 시리즈의 진정한 섬뜩함은 인간의 어리석음이 치유될 수 없다는 데 있다. 60여 년 간 그랬던 것처럼 고질라가 다시 눈을 뜰 것이다. 나중에 다시 만나요, 고질라!

글 전종혁(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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